스물일곱, 지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됐다. 축의금 봉투에 돈을 넣는 일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나이다. 군대 선임, 대학 동기, 고등학교 동창, 너나 할 것 없이 당도하는 카톡 알람. 어느 땐가부터 지나가는 소리로 비혼을 선언하고 있는 나는 뿌려놓은 축의금을 회수할 자신이 도무지 없지만(당신, 비혼식이라고 들어보았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친구의 경사에 계산 없이 마음을 걸어 보낼 수 있다. 어쩌면 때 묻지 않은 우정을 과시하는 자아도취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뭐 그럼 어떤가.
재밌는 건, 내가 당사자들과 보냈던 시간이 인생에서 꼬박 3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교환학생을 끝내고 한 달 반 남짓, 바르셀로나의 한인민박에서 가까스로 일자리를 구했다. 아침밥이 제공되고 숙소비를 받지 않는, 다달이 관광지나 다녀오라며 주인이 쥐여 주는 200유로를 용돈 삼아 지냈던 날들이었다. 방탕하면서도 하루하루에 충실했던, 그때의 손님들이다.
2녀 1남. 대체로 이런 조합은 엄청 친한 친구들이 날을 맞춰 놀러 온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같은 성당에 다녀 줄곧 붙어 다녔다는 증언은 역시나, 예상 범위에 꼭 들어맞았다. 예측하지 못했던 건 그들의 신앙심인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그들 얼굴의 진지함이었다. 해외여행이나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 등은 마음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그저 옳다고 믿어왔던 세계에 의문을 품으면서다. 이런 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야 뭐, 뻔한 이야기잖나.
아무튼, 박사님 박사님 하면서(그중 누군가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두세 살 터울이었던 형 누나들과 함께 놀았는데, 어느덧 귀국하고도 3년이 지났다. 시간은 야속하고 과거는 사진을 들추어내야 겨우 어깨동무를 해주며, 미래는 여전히 불안한데 오늘은 짱짱 피곤하다. 그러니 고된 하루의 끝에 불쑥 들이밀고 오는 추억으로부터의 초대는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심지어 불알친구였던 두 사람이 결혼식의 주인공들이라니!
세상에 만 명의 사람이 있으면 필연코 만 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제각기 걷는 길에는 정답이 없고, 마찬가지로 오답 또한 없어서 누구의 딴지도 무색할 뿐이라고. 나는 분명 두 사람 사이의 서사를 잘 모른다. 귀국하고 만나자 말만 했지 실제로 만난 적도 없다. 3년간의 사건뿐이랴. 둘 사이의 플롯은 나라는 인물이 바르셀로나에서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고, 무수한 다채로운 겹이, 어쩌면 상상도 못 할 재미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테다.
나는 그것을 모른다. 또한 계속 모르기를 바란다.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날 깊이 알지 못하면서도 그저 내 앞날을 묵묵히 축복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이기를.
두 사람, 그리고 작년에 결혼식을 올린 다른 한 사람에게 짧은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