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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진 Apr 19. 2024

삶의 정답들이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어디서 얻냐고, 누군가 물었다.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당최 무슨 말인고 하니 연필은 쓰기 위해서 존재하고, 지우개는 지우기 위해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하길 인간은 그저 아무 목적 없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 그럼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앞으로 내던져야만 하는 존재다. 그리 보면 우리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데는 의미 있다 볼만한 구석이 하나 없지만, 반대로 어떤 의미든 제 마음껏 부여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너와 내가 아닐까.     


스무 살 이후로 나와 알고 지낸 이들이라면 믿기 힘들겠지만, 학창 시절엔 보수적인 가치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곤 했다. 애국심과 종교가 양 날갯짓으로 하루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지겨운 야자 시간을 버틸 때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쓰일 훗날의 어느 날을 생각했고, 달콤한 일탈이 유혹할 때는 사후의 찾아올 천국의 영광을 천장에 매달아 놓은 굴비 쳐다보듯 견뎌냈다. 인생에 다시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때, 내 하루를 살아갈 힘은 그런 데서 나왔다.     


봄이 수차례 바뀌면서 얼굴의 여드름 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군대를 가고, 수다한 알바로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체코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시야를 넓혔다. 나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이제까지 감히 의심하지 않았던 삶의 정답들이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분법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해야 했던 인간은 그 가운데의 선택지, 심지어 선 바깥의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까지 삶의 의미로 여겼던 대부분이 무너져 내린 바닥에 서서, 나는 무척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건 기분 좋은 불안함이었다. 알을 깨지 않은 새는 날아갈 수 없고 허물을 벗지 않는 뱀은 자랄 수 없다. 비어버린 내 삶의 의미라는 그릇에 하나둘 채울 일만 남았으니까. 


영화 「쿵푸팬더」에서 주인공 포가 열어본 쿵푸의 비급 ‘용문서’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네 삶의 의미를 한번 읊어보라면 일 년 뒤에도, 어쩌면 십 년 뒤에도 난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소리나 질펀하게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럼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덧없이 무용한가? 아니, 더없이 귀하고 찬란하다. 이제는 하루를 ‘열심히’ 살고자 애쓰지 않는다. 점심밥의 밥알을 입안에서 족히 굴리고, 길가의 꽃 하나에 잠시 시선을 멈추며, 우연스러운 상황이 선물처럼 들고 와주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보듬는 데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에 끌려다니지 않고, 다만 오늘을 ‘충만히’ 살고자 한다. 내 하루를 살아갈 힘은 그런 데서 나온다.



오늘을 무용하게, 그치만 충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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