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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니 Dec 25. 2020

안드레아가 멋진 진짜 이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 제목부터 화려한 이 작품은 소설도 재밌지만 영화도 참 재밌고 화려하게 잘 만들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안드레아의 러브라인 속 딜레마에 초점을 맞춰 “아, 일을 잘하는 것과 행복한 사생활을 병행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구나.” 했다. 그 사이에 일을 시작하고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니, ‘직업인’으로서 안드레아는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된다.


 안드레아는 변한 게 아니야.

안드레아는 내내 공격을 받는다. 선배 에밀리는 “지미추를 처음 신은 날 넌 영혼을 판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안드레아가 일을 시작하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괴팍한 상사 밑에서 일에 과몰입되어 예민하게 군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 속에 안드레아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 네이트와 헤어지기도 한다.


안드레아는 후반부로 갈수록 미란다와 패션계를 꽤나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이런 그녀에게 남자 친구 네이트는 말한다.

네가 뭘 하든 진실성(integrity)을 갖고 하길 바랄 뿐이야. 처음엔 런웨이 여자애들을 놀리더니, 이제 너도 그중 한 명이 됐잖아.

안드레아는 스스로를 속이고 합리화하며 패션업계와 런웨이가 주는 달콤한 보상에 취한 것이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경험하는 만큼 자란다. 패션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안드레아지만, 업계의 한 복판(말 그대로)에서 일하면서, 업계의 생리가 어떠한지, 그 업계가 좇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고 했던가. 한없이 얕다고 생각하던 패션 업계지만, 그 안에 진정성을 갖고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똑똑한 안드레아는 이를 받아들이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빠르게 갖춰나간다. 그녀가 날씬해지고, 예뻐지고, 명품을 입게 된 걸 ‘사람이 변했다’고 후려치면 곤란하다. 그녀는 원래 그랬듯, 열심히 살고, 도전하고, 빠르게 배우는 앤디였을 뿐.

“The dream job a million girls would die for” 영화에서 아이러니하게 수차례 반복되는 이 구절 속 ‘완벽한 직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이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팀플레이이며, 내가 수행하기로 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는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 마감 안에 글을 써내는 것, 매일 아침 빵을 구워내는 것,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것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적당히 일하고 퇴근해서는 답 없는 불만을 늘어놓는 것 보다야, 안드레아와 같은 적응력과 몰입이 협업하는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성장에도 유리한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쌔한 건… 안드레아의 일이 근로기준법 상으로도 윤리 차원에서도 엉망인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이겠지. 미란다는 비인간적인 업의 틀을 짜 놓고는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안드레아임을 계속해서 주지 시킨다. “파리에 가지 않으면, 런웨이나 다른 출판업계에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고 말한다.(협박한다.)

이래 놓고 decision's yours 라니...

일 잘하기만으로 부족한 2%

결국 일을 잘한다는 것은 업계의 룰을 충실하게 따르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업계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종사하는 업이 내 가치관과 명쾌히 들어맞지 않을 때, 어디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노력이 쌓여서 ‘좋은 직업의식’이 되고 어떤 노력이 ‘사람이 변했네’를 만드는 걸까?

대학교 저학년 때 동아리 회장을 맡았었다. 다수의 운영진들이 각 팀을 끌어가는 공연 동아리였고, ‘하고 싶은 일’과 ‘귀찮은 일’의 구분이 매우 명확한 동아리였다. 전자는 공연이요, 후자는 공연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 온갖 잡일이었다.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한 친구가 있는데, 영상 내지는 음원 팀에 속해있던 그 친구가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하지 않고 대략 잠수를 타는 상황이었다. 혼내려는 운영진에게, 그 친구는 꽤나 예의 바르게, “언니, 정말 죄송한데요, 정말 너무 하기가 싫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해서 회장단과 모든 운영진을 띵-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와 신선하다. 너무 하기 싫어서 못하겠다니. 이렇게 답이 안 나오는 말인데, 이렇게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라니.

안타깝게도 우리의 직업세계가 이 에피소드처럼 심플하게 돌아갈 수 없는 건, 우리의 ‘일’은 필히 다른 누군가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업무를 완수해야 다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유관자, 내 일의 결과물이 가닿는 소비자까지. 결국 직업의식이 필요한 궁극의 이유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이 배려에는 스스로에 대한 배려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베스트 시나리오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가치도 실현한다-와 워스트 시나리오 -가치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을 그럭저럭 하며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어디쯤에 계속 머물러도 좋다는 관성은 결국 사람을 주저앉힌다. 모든 직업에서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음을,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만 돌아갈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그래도 더 나은 일과 세상을 상상해보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제 와서 보니, 그래서 안드레아는 참 멋지다. 직업의식이 투철한데, 꿈꾸기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삶은 흑백으로 절단하기 어렵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지’ 하고 회색 지대에 멈추기를 택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사람은 타락하게 된다. … 지금 우리는 비록 회색 지대에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밝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각자의 사정은 있지만, 어찌 됐든 밝음의 제대로 나가려 해야 한다.”

- 이대희, 장강명 인터뷰 '아르바이트생 자르고, 산 자들의, 한국 사회 버티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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