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켓 팝송 Aug 08. 2019

 넉둥베기

 윷놀이. 넉동베기라고도 한다.    


 넷플릭스로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보다 울었다. 그렇게 싫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일찍 홀아비가 되었다. 재혼을 하려 했으나 나 때문에 실패했다. 사춘기였던 나는 새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새어머니를 떠밀었고, 그녀는 집에서 떠났다. 그럴 때도 아버지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크게 혼내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터미널 현 사장’으로 통했다. 과수원을 팔고 단란주점을 차렸지만 망했다. 그 뒤 무도학원을 동업으로 운영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춤을 췄다.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콜라텍이 있는데 매일같이 그곳에 가서 춤을 춘다. 술은 이제 끊었지만 춤은 끊지 못했다. 한때 주말마다 경마장에 다녔던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넉둥베기를 즐겼다. 제주도 남자들은 대부분 한량 기질이 있어서 으레 넉둥베기를 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장 한켠에서 넉둥베기 판이 펼쳐진다. 

 멍석을 깔아놓고, 술잔에 감귤나무로 만든 작은 윷을 넣고 던진다. 사내들은 그 멍석 주위에 빙 둘러선 채 윷을 던지거나 훈수를 둔다. 담배를 피기도 하고, 도감에서 바로 갖고 온 돼지고기에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주왁거리다 기분파 삼춘에게서 용돈을 받곤 한다.  

 아버지는 요즘도 로또를 산다. 아버지는 경마를 할 때나 로또를 사며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재수보기로 하는 거지 뭐.”

 재작년에 아버지는 로또 3등에 당첨됐다.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택복권 시절부터 복권을 샀기에 재수가 좋은 거라고 말할 수 없다. 하긴 경마에서 400배 배당에 걸린 적도 있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그 말에 500원을 걸었다. 

 아버지는 마흔 넘은 아들에게 여전히 4대보험 되는 곳에 취직하라고 말한다. 아버지도 직장 생활을 오래 했으면 삶이 달라졌을까. 사료공장에 다닌 몇 년 빼고는 이렇다할 직장이 없었던 아버지는 시 쓴다고 한량처럼 지내는 내가 걱정이 크겠지.

 아버지도 고혈압이고, 나도 고혈압이다. 나는 넉둥베기를 하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운수(運數)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것마저 없다면 인생 참 쓸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