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곰수기라고도 한다.
나는 버스 타는 걸 좋아한다.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보면 여러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일주도로가 있다. 일주도로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면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동회선과 서회선으로 나뉘어 있지만 환승을 하면 제주도를 다 돌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에 다 돌려고 하는 무모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낫다. 한 사흘 정도 여유를 갖고 돌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으리라.
버스를 타면 어느 쪽에 앉을지 정해야 한다. 제주도 시외버스는 지정석이 없기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다. 한쪽은 바다가 보이고, 한쪽은 산이 보이기 때문에 그날 그 시간의 기분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 된다.
바다가 보이는 쪽 창가에 앉았을 때 운이 좋으면 곰세기를 볼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 제주도 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는 헤엄을 치다 가끔씩 점프를 한다. 그것은 바다의 무지개다. 점프를 하는 돌고래를 본 날은 기분이 좋다.
남방큰돌고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섬을 좋아한다. 빙빙 돌 수 있는 섬 주변에서 주로 서식한다. 섬에서 살면 섬을 빙빙 돌게 된다. 사람이나 돌고래나 섬에서는 처지가 비슷하다.
해녀가 물질을 하다 돌고래를 만나면 “배 알로! 배 알로!”라고 외친다. “알로”는 ‘아래로’라는 뜻의 제주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돌고래가 해녀의 소리를 듣고 해녀보다 아래로 아주 낮게 잠수를 해 지나간다고 한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제주도를 돌다가 제주 바람을 만나면 우리는 바람 아래로 자세를 낮춰야 한다. 무언가 부딪칠 것 같은데 자세를 알로하면 의연하게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우리는 돌고래와 함께 제주도에 산다.
자전거를 타는 건
바람 속을 헤엄치는 것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건
음악 속을 헤엄치는 것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을 사진 찍는 건
시간 속을 헤엄치는 것
우리는 모두 바다 속을 유영하(겠)지
월정리 바닷가 고래가 될 카페 이름처럼
고래가 될, 아니 이미 고래가 된
사람들, 마을들, 슬리퍼들
너의 마음속에서 헤엄치던 날이 있었지
어린 마음은 낯선 공항의 검색대에서처럼 불안했지
이제 다시 만난 자유는
푸른빛 자전거 페달처럼 돌아가지
시간 속을 헤엄치는 건
구럼비 앞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
바람 속을 헤엄치는 건
태국 소녀의 발가락을 간질이는 것
음악 속을 헤엄치는 건
제주도 바다를 한 바퀴 도는 것
- 졸시, 「남방큰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