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이 들어오는 재미
결혼식을 하고 왔네!
외갓집에 엄마 형제가 많아 모였다 하면 거의 동네잔치 수준인데, 이번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다 온 얘기를 남편 외할머니께 대충 설명드렸더니 결혼식을 이미 한 거나 다름없으시단다.
우리 집은 외갓집이 사람도 많고 정도 많아서 늘 활기가 넘친다. 그에 반해 남편네 가족은 인원수 자체가 적다 보니 정적이고 지난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매우 쿨한 집안이라 바쁘면 가족행사고 뭐고 굳이 안 모이는 느낌이다. 특히 외가는 남편 가족을 제외하고 모두 해외에 거주하고 계셔서 만나 뵙기도 어려운 상황.
이렇게 양쪽 가족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보니 외가에 인사 가는 것이 살짝 걱정이 되었다. 어찌 됐건 남편은 외부 사람이고 이런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상황이 닥쳐 봐야 안다. 이런 걱정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사촌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은 사실이 되었다. 도착한 날부터 온갖 질문에 시달렸는데 그것보다 해석이 문제였다. 특히 할머니가 하는 말은 거의 못 알아 들어서 옆에서 통역을 열심히 해주었다.. 나도 사실 계속 서울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100% 알아듣진 못했지만. 결론은 남편 될 사람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셨다. (거의 말도 안 했는데 뭘 보고 좋아하신 건지는 의문이다.)
이모 삼촌들도 뭐가 그렇게 신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랑이 매우 넘쳤다. 만 2일 동안 토하기 직전까지 먹었는데 대충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조개찜
킹크랩
대게
랍스터
삼겹살
자연산 회
한우
돼지국밥
곱창전골
중간중간 마시는 소화제를 두 번이나 먹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계속 먹으라는 이모와 삼촌들. 다음 모임 때는 더 대단한 메뉴를 준비해보겠다고 하시는데, 벌써 위장이 벌렁벌렁 기대된다.
결혼식을 안 한다고?
식사하면서 이것저것 여쭤보시는 와중에, 그래서 결혼식은 안 할 거라고 말씀드리니까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결혼식을 안 한다니. 심지어 나와 남편이 가족들 중에 가장 처음으로 결혼하는 조카라 더 그러실 법하다.
"코로나이기도 하고, 괜히 서울에서 식 했다가 어른들 코로나 걸리시면 어떻게 해요. 그렇다고 밥도 한 끼 안 먹자니 그것도 그렇고. 그리고 결혼식에 큰 뜻이 없어요."
이모 삼촌들은 나중에서야 그래, 너희 뜻이 정 그렇다면 하고 넘어갔지만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내년에 그럼 식 하겠네?"
"... 네"
일단은 얼렁뚱땅 넘어가기로 한다.
김서방!!
다들 작은 이모가 텐션이 높아졌을 때 그 상황을 가끔 따라 하곤 한다. 아직 법적으로 부부가 되기 전이었지만 사촌동생들도 너도나도 '형부'라는 단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쓰더라.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큰 즐거움이 될 줄 몰랐다. 다들 엄청 신이 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