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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경채 Jun 08. 2020

할아버지가 사이비 종교에 hook 빠지신 날

대학교 때 집안 사정으로 나는 친가 쪽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서울의 북쪽 끝 동네에 살았다.


평생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할아버지께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당시 숙취에 자주 시달리던 열혈 대학생이었던 나는 소화제 및 두통약을 껌처럼 한 움큼씩 집어먹고 다녔는데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부터 집안의 모든 약을 없애 버리셨다. 소주를 3병 정도 먹고 들어온 더럽게 어지럽고 더운 6월의 어느 날, 나는 당연히 배탈이 났다. 할아버지께서 약을 가지고 오신다더니 갑자기 500원짜리 동전만 한 이상한 종교적 모양인 것 같은 스티커를 가지고 오시며 내 배에 그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이것은 실화이다.


15년 정도를 빨리감기 하겠다. 이 15년 동안 할아버지는 각종 사이비 종교를 3년에 한 번 꼴로 섭렵하셨다. 집안은 이미 몇 번 발칵 뒤집혔고 아버지를 포함한 집안사람들 여럿이 각종 종교 단체를 찾아가 한 바탕 항의하고 온 모양이었다. 다행히 큰돈을 요구하는 단체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알뜰하시다. 돈을 요구하는 종교는 본인이 알아서 거르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그러니까 작년, 한국에 와서 본가를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 된 나는 매 해 한국에 꼬박꼬박 오지만 그래야 1년에 한두 번,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뵙지는 못한다. 할머니표 편육을 뜯으며 이북식 김치말이 국수를 후루룩 먹었다. 할아버지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셨고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6.25를 겪으며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이북식 음식을 자주 먹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대충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술을 많이 드신 할아버지는 아무도 몰랐던 인생의 이야기를 낡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꺼내어 들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신의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시면서 반공 지식인 운동에 참여하셨다. 1950년, 북한의 상황이 삽시간에 변하면서 할아버지는 투옥이 되셨고 상황이 심각하게 발전되면서 탈옥을 하셨다. 그것도 본인의 사형 집행 전 날, 예전에 도움을 주었던 한 친구로부터 기적적으로 도움을 받아서. 그때부터 두 발로 걸어서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셨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 붙잡혀서 결국 북한군에 징집 되셨다. 첫 전투에서 부대가 거의 전멸한 상황이었는데 매일매일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3일 정도를 죽은 척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3일 후, 죽어 있는 남한 병사의 옷을 벗겨서 본인이 입으시고 다시 걸어서 남쪽으로 가셨다. 그러다 다시 북한군에 적발되시면서 최전방으로 끌려 가시고, 부대는 다시 거의 전멸. 이렇게 몇 개월을 사시고 숨이 겨우 붙어 있는 상황에서 탈영에 성공해 산속의 동굴을 찾으셨다. 그 동굴에서 뱀과 쥐를 잡아 드시면서 다시 몇 개월을 버티셨다고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이 끝날 무렵 엄청난 몰골로 부산으로 오신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남한에서 체포되신다. 북한 첩자라는 이유로. 부산의 감옥에 1년간 투옥되신 할아버지는 증인을 서 줄 고향 사람을 몇 개월 만에 겨우 찾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셨다.


퍽퍽한 편육만큼이나 한꺼번에 소화하기에는 힘든 이야기였다. 우리 가족 모두 너무 놀랐다. 왜 90세가 되실 때까지 한 번도 누구에게도 자세히 얘기를 안 하셨을까?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인생의 트라우마를 자발적으로 내어놓은 곳이 종교였던 것 같다. 많은 종교를 거치면서 해답을 찾고 계셨던 것 같다. 특히나 돌아가셨을 부모님 및 형제들의 넋을 기린다는 컨셉으로 접근하는 종교를 적극적으로 믿으려고 하셨다. 15년쯤 전에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통해 북한에 두고 오신 가족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후, 종교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은 할아버지의 종교 생활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게 되었다.


2019년, 할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차례 / 제사를 폐지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믿으시는 알 수 없는 종교의 신께서 우리 집안은 향후 1000년간 잘 풀리니 차례 / 제사를 일절 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시댁에서 30년 넘게 차례 지내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와 작은 엄마들은 이 신의 열렬한 팬이 된 모양이다. 듣보잡 신이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사시는 우리 할아버지 마음 좀 편하게 해주는 신이면 좋겠다. 이번 신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참고: 저자는 무교이고 사이비 종교는 대체적으로 반대하는 명확한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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