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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경채 Mar 10. 2019

실리콘밸리 vs. 월스트리트, 직장으로서의 점수는?

업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을 고르라면 "월스트리트랑 실리콘밸리 많이 다르죠? 어떻게 달라요?" 3년을 월가에 있다가 이제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으로 넘어온 지 2년. 항상 그 질문에 대해서 뻔한 대답을 하다가 이제는 정확히 그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더 넓게 적용하자면, 금융업계에서 IT업계로의, 대기업 문화에서 스타트업 문화로의 "체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월가에서는 그 사람의 과거가 그 자체로 자산이라면,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사람의 현재 Learning이 자산이다.


월가 시절, 소위 가장 잘 나간다는 Managing Director와 IPO (기업 공개) 딜을 따내기 위해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클라이언트 접근 방식을 많이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월가 초년생일 때 (그러니까 그 당시로부터 한 15년 전, 약 2001년도) 만들었던 프레젠테이션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새로운 기업의 재무 정보로 업데이트하자고 제시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업계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재무 이론들 및 밸류에이션 모델들은 100년째 바뀌지 않았고 바뀔 필요도 없다. 10년 전에 누군가 만든 밸류에이션 모델을 숫자만 바꿔서 무난히 쓸 수 있는 이유이다.


테크 업계는 거의 정 반대이다. 내가 누군가보다 1년 늦게 들어왔다고 해서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한 3개월만 지나면 새로운 프로덕트, 알고리즘, 트렌드가 소개되면서 나보다 먼저 들어왔던 사람이나 나나 어차피 다 같이 새로 배우는 입장이 된다. 흥미롭지만 피곤할 수는 있다. 월가에서는 그 사람의 과거가 그 자체로 자산이라면,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사람의 현재 Learning이 자산이다.


월가에서의 커리어가 곧게 뻗은 직진 고속도로라면 실리콘밸리에서의 커리어는 잔 길이 엄청나게 많은 굽은 도로이다.


월가가 경쟁적인 사회이고 구조조정도 피해 갈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커리어에 대한 확실성이 보장되는 곳이다. Analyst로 2-3년 있으면 자연스럽게 Associate이 되고, Associate을 3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VP가, VP를 3년 하고 나면 Executive Director가, Executive Director를 3-4년 하고 나면 Managing Director까지. 내 커리어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그 앞길이 거의 다 보인다. 심지어 내가 6-7년 후에 Managing Director가 된다면 어느 방에 앉아서 일을 할지조차 미리 상상해볼 수 있다. 동기들과 누가 어느 방을 차지할지 재미 삼아 미리 이야기해보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회사들은 대부분의 조직들이 상당히 수평적이기 때문에 같은 부서에서 수직적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팀을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세일즈 부서에 2-3년 정도 있다가 프로덕트 마케팅팀으로 옮겨서 다시 2-3년, 파트너십 팀으로 옮겨서 몇 년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그 부서의 팀장으로. 팀장이 되고서 다시 다양한 부서들의 팀장으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도 내부 이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수직적인 커리어 발전이 아닌 수평적인 커리어 발전을 자기 계발의 중요한 부분으로 교육시킨다. 월가에서의 커리어가 곧게 뻗은 직진 고속도로라면 실리콘밸리에서의 커리어는 잔 길이 엄청나게 많은 굽은 도로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업무 "fit"은 금기시되는 단어이다.


월가에서 내가 사람을 직접 채용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사람을 2분 안에 판단하도록 트레이닝을 받았다. MBA 시절, 투자은행 리크루팅을 준비하면서 선배들이 항상 자기소개 2분 버젼, 1분 버젼, 30초 버젼, 총 3가지를 준비하라고 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뱅커들이 사람들이 판단하는 시간이 2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뷰 프로세스는 훨씬 길다. 하지만 그 인터뷰 프로세스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사전 인터뷰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어필해야 한다. 그 사람이 악수를 어떻게 하는지, "스몰 토크"를 어떻게 하는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 미국 사람들이 하는 잡담 - 날씨, 주말, 풋볼 경기 등 종류가 참 다양한데 한국사람으로서는 참 재미없는 시덥잖은 이야기들), 짧은 시간 안에 명확하게 말을 잘하는지 등으로 사람을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는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맞다. 큰 규모의 IPO나 M&A 딜을 따오기 위해서는 CEO나 CFO급 사람들과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한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테크 업계로 이직한 후, 가장 놀라운 점은 채용 프로세스였다. 이 업계에서는 지원자와 "스몰 토크" 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지원자의 경력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압박 면접의 형식보다는 지원자의 과거 경험을 토대로 지원한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깊게 물어보는 면접 형식이다.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fit"을 찾지 않는다. 현재 내가 리드하고 있는 팀을 봐도, 데이터 천재라 데이터를 가지고 파트너를 설득시키는 친구가 있고, 활달한 성격이라 파트너들과 relationship을 잘 쌓아서 설득시키는 친구도 있다. 둘 다 동일하게 일을 잘하는데 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내가 "fit"을 보고 채용했다면 둘 중 한 명은 내 팀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결론적으로, 한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가 없다. 이 두 업계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을 했고 그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사람을 뽑고 키운다. 직장인으로서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어떤 환경에 더 잘 맞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하버드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월가에 애널리스트로 들어와서 너무 고생을 하고 인사 고과 바닥을 받은 애널리스트와 친했었다. 그 친구는 많은 마음고생 끝에 1년 후 그만두고 본인이 직접 창업을 해서 현재 천만 불 정도의 펀딩을 받고 잘 나가고 있다. 반면에 전통적인 대기업들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걷다가 테크 업계로 이직한 후 적응을 못하는 친구들도 너무나 수두룩하게 봤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업계를 이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질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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