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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실습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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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min Nov 15. 2017

완치가 되나요

실습 일기

만성 질환으로 여겨지는 병을 걸린 사람들이 의사에게 종종 묻는 질문 중 하나이다. 이 병은 완치가 되나요? 요즘은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고혈압과 당뇨이므로, 평생 관리하면서 사는 병이라고, 이제 평생 건강에 신경 쓰시면서 사시면 된다고 말해주면 된다. 다행히 저 질병들은 드러내 놓고 아픈 경우가 적고, 드러내 놓고 아파도 아주 가끔 아플 뿐이지, 매일 아프진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나약한 의사의 답안에 만족을 하고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드러내 놓고 아픈 질병에서 완치가 되는지 환자가 물어보았을 때 '노력하고 있지만 힘들고, 통증 조절과 악화 방지가 현재로서 최선'이 모범답안인 과에서는 어떨까. 당장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지고 싶지만, 의학이 잘못한 것은 없고, 스스로에게 왜 이런 질병이 걸리는지 원망스러울 것이다. 심지어 HIV도 정복을 해 간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병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정도로 정복을 못한 병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있긴 하다.


류마티스내과에서의 실습 일기이다. 류마티스는 국가고시 문제집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분량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임상종합평가 문제집에서는 알레르기와 합쳐진 분량을 가진다. 짧지만 치료제가 헷갈려서, 제발 진단이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범위이다. 치료제도 모든 병마다 상이하면 문제를 풀기 편할 텐데, 치료제의 종류가 몇 개 되지 않다 보니 그 약들이 모두 보기에 나오고, 1차 치료제를 묻는 문제가 나오면 고민이 많이 된다.


류마티스내과의 회진을 돌면서 입원 환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대부분 자신의 질병 경과를 알고 있고,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통증 경감만이 최선이고, 합병증을 치료하는 데 주력하는 의료진에 큰 불만이 없다. 외래에 온 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조금 다르다.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온 환자가 교수님께 관절이 모양이 조금 바뀐 것도 같고 아프다고 호소한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약물로 치료하면 바뀐 관절 모양을 원상 복귀할 수 있고, 통증도 말끔하게 없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류마티스 질환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먼저 교수님께서는 환자에게 바뀐 손가락 모양은 안타깝지만 다시 원상 복귀될 수는 없다고 설명해 드린다. X-ray를 보면 바뀐 손가락의 모양이 더 잘 나타나서 환자 스스로가 마음아파하면서 완치를 바라지만,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직까지는 더 이상의 변형을 막는 일이다. 환자는 그것은 확실하게 가능하냐고 묻지만, 여기서도 확답은 힘들다. 현재로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진료의 마지막에는 환자는 결국 완치를 기대하지 않고, 질병 악화나 합병증이 없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된다. 병원을 올 때까지 참 기대를 많이 했을 텐데,라고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통증 조절도 자유롭지 않다. 약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바꿔가야 한다. 스테로이드 약제를 쓴다면 체중 증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을 해야 한다. 류마티스 질환이 여성에서 호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환자의 반응이 어찌 보면 그려지지 않는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어쩔 수없이 관절이 힘든데 처방받겠다고 말하는 모습. 다른 약들은 항류마티스 약물이라고 하고, 항말라리아제, 술파살라진, 메토트렉세이트 등이 있는데,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가 필요한 약들이 있는 등 약을 처방받는 환자가 자신이 부작용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류마티스내과 실습을 도는 과정은 평화로운 분과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경험이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았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공감을 해 주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진료를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처방하면서 환자에게 부작용을 말해 주어야 하는데, 항류마티스약물은 부작용의 스펙트럼도 넓고, 심한 부작용이 많아서 환자의 순응도가 낮아지기 좋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짧은 외래 시간 동안 모든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불가능하여 따로 환자들을 모은 뒤 설명회를 하기도 한다. 가벼운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온 환자에게 치료는 해 주지만, 걱정만 얹어주고 귀가시킨 느낌이 들어 미안했다. 계속 관리를 안 했다가 관절의 손상이 영구적으로 오는, 걱정이 필요한 질환이긴 하지만, 너무 많은 숙제를 던져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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