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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꼭그래 Oct 25. 2019

천사를 위한 위스키

영국 영화

The Angels' Share, 천사를 위한 위스키

 한국인들이 영화를 보는 많은 이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은 주로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영화들이다. 켄 로치 감독의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청춘의 방황과 블랙 유머를곁들인 좋은 영화다. 관객을 지적 활동으로 이끌어 들이려는 영화가 아니라 그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되는영화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이런 영화는 스트레스로 팽팽하게 긴장된 정신을 부드럽게 해준다. 죽은 것은 뻣뻣한 것이요 산 것은 부드럽다고 한 장자의 말처럼 우리의 정신을 긴장감에서 잠시 해방되게 해주는정신적 치유 영화이기에 이 시기에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스토리의 맛


폭행죄로 실형 선고가 분명했지만 출산을 앞둔 여자 친구와 태어날 아기의 미래를 위해 법원은 감옥에 가두는 대신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로비는 자신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삶을 다짐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들의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로비와 그를 따라다니며 싸움을 거는 클랜시와 대립하는 상황이다. 클랜시는 툭하면 그를 찾아와 시비를 걸어 폭력을 행사하게 해서는 감옥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달라질 것 같지 않던 그의 상황은 로비의 일상의 아주 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사회봉사 감독관 해리를 통해서 맛 좋은 위스키를 마셔 보기도 하고 해리의 제안으로 위스키 시음회의 참석은 로비의 삶이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준다. 새로운 삶을 위해 고가의 위스키를 훔치려는 그를 위해서 세 명의 친구들이 동행하게 되는데. 


다큐멘터리처럼 사회 문제와 관련된 영화들을 보는 이유는 문제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발견된 문제와 해결 방식을 감독이 제시한 시선에서 볼 기회를 가져본 다음 자신의 지성으로 재구성해보기 위해서다. 이런 영화들은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발견하기가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감독이 제시한 해결에 관한 시선에 관해서도 일치시킬 수 없어서 이해의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성에 의한 재구성이라는 긴 호흡이 필요한 영화들은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꺼려지는 영화가 되기 쉽다. 


다른 애호가들은 스토리를 수집하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 바람직한 인생 연습은 다른 사람의 일생이나 한 사건에 관해서 그가 판단하고 부딪쳤던 것들을 간접 경험 해보는 것이다. 그것을 해주는 것이 영화의 스토리다. 영화적 삶의 리듬이 자신과 비슷해서 공명하게 된다면 “인생영화”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감정을 더욱 자극해 주기도 하고 스토리를 명확하게 해 주는, 그다지 해석하기에 어렵지 않은 미장센과 같은 것이 이해가 된다면 영화는 더욱 그럴듯한 것으로 여겨져 누구나 수집하고 싶은 영화가 된다. 영화를 통해서 스토리를 수집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추출해 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수집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성비 높은 예술 양식이기 때문이다. 


영화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해낸 영화라서 영국의 사회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고 스토리를 수집하기에 좋은 영화다. 로비라는 청년으로 영국이 가진 사회문제를 보여주더니 영국의 문화와 유머를 곁들여 이야기로 풀어냈다. 영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영화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자신과 사회 문제에 영웅적으로 맞서는 모습으로 우리의 격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할리우드 영화나 지성의 결과물들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 탐구하려는 유럽 영화와는 다르게 일상의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려는 것이 영국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국 영화는 타인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신화적이거나 이념적이지 않다.


각 캐릭터의 성격을 영화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폭력성을 가진 주인공 로비와 절도벽이 있는 모, 무지한 알버트, 풍기문란 한 라이노라는 네 명은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판정을 받는 법원에서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에게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폭력은 용감함으로, 절도벽은 협력과 쟁취로, 무지는 순수함으로, 풍기문란은 자유로움으로 보이게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어떤 면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것이 꼭 옳은 결정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식도 입체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리스의 비극을 영국의 현실과 연극에 적합하게 변형해 썼던 셰익스피어의 후예다운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결핍을 보게 한다. 원하는 것이 많든, 적든,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결핍된 존재로 살아간다. 결핍을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도 되는 것 마냥 우리는 쟁취하려 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누군가와 경쟁하고 타협하거나 맞선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미덕이면서도 궁극적인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영화는 그 비극을 어떻게 피하는지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삶의 목표를 높게 설정해 힘겹게 살아가게 하지 않는다. 흔한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환상 같은 목표를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게 한다. 


영화는 로비를 통해서 결핍을 채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로비가 얻은 것은 결핍된 자들의 우정과 키워야 할 아기와 신뢰를 얻어 함께 살아가야 할 아내다.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에서 로비의 욕망이 시작되지 않는다. 매년 오크통에 담긴 위스키가 2% 정도 증발해 사라지는 양을 천사의 몫이라 하는 엔젤스 셰어 Angels' Share라는 것에서 영화의 제목을 가져온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거대한 야망을 가슴에 품게 한다던가 실현해야 할 것들에 관해서 의지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실수와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하고 좌절하면서도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하는 위스키 한 잔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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