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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Jun Jul 02. 2015

24시간 카페의 Early Bird

내일 아침 약속이 무서워서 난 오늘 엄청난 얼리 버드가 되기로 했다

지금 막 종로의 한 24시간 카페에 들어왔다. 벌써 11시가 넘었군. 지금 쓰는 브런치 글을 마무리짓고 페북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곧 12시가 될 것이다. 이제 일할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하는 스타일이 완전 올빼미 족 아니냐고? 아니, 왠 올빼미람. 나는 지상 최고의 '얼리 버드'다. 새벽 12시의 다른 이름은 AM 0시. 하루를 나누는 경계선 중 가장 이른 시간에 맞춰 일을 시작하니 이게 얼리 버드가 아니고 무엇이냐 말인가. 어허. 


사실 나의 초 얼리 버드 체질은 요즘 눈에 띄게 감소 중이다. 아침 7-8시에 일어나 새벽 공기를 쐬며 일을 시작하는 버릇까지 생기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는 바람에 매우 당황하고 있던 차에 평소 하던 대로 안 하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나 큰 병이 생겼을까 병원에 가보니 그냥 비만이라고, 운동이라 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제기랄.


오늘 얼리 버드가 된 까닭은 지극히 자발적인 이유다. 일이 밀려서 그런 게 아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제 대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이유는 단 하나, 내일 아침 일찍 미팅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게 아침 약속과 밤샘 작업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을까? 나는 아침 10시 이전에 잡힌 약속에 대해서 일종의 노이로제 비슷한 감정이 있다. 


일찍 일어나는 것과 일찍 밖에 나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씻고, 옷을 갈아 입고, 대중 교통 시설까지 움직여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내린 후 다시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는 데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잠의 요정이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나를 무진장 꼬시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까진 좋지만 역으로 걸어가는 데 벌써 요정이 급습하면 정말 답이 없어진다. 애써 역에 도착해 운이 좋아 버스, 지하철 자리라도 난다면 행복감과 더불어 동시에 미지의 불안이 엄습해온다. '과연 제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솟구치는 순간 잠의 요정은 내 귓속에 소곤거린다. 


"아 몰랑~"


일명 '서울 여행'이라고 부르는, 서울 곳곳을 아침부터 탐험하다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잦아지자 차라리 약속 장소 근처에 미리 가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교훈도 생겼다. 그 시간이 비록 굉장히 이른, 새벽이 시작되는 때라도 말이다. 


게다가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24시간 카페는 일의 효율을 높이기에 정말 안성맞춤인 곳이다. 빛이 환하게 만발하는 공간에서는 음료도, 출출할 때 먹을 것도 판다. 게다가 백색 소음까지 BGM으로 깔린다. 그리고 누가 내 물건에 손댈까 봐 쉽게 잠을 잘 수도 없는 구조다. 


하지만 밤 새운다고 진짜 두 눈 퍼렇게 뜨고 있으면 안 된다. 24시간 카페에서는 잠깐이라도 자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점점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담도 커져서 물건을 깔아놓고 단잠도 쿨쿨 잘 잔다. 


다만 새벽 5시를 조심하자. 우리 같은 얼리 버드가 잠시 낮잠을 잘 때 도둑이 습격할 수 있다. 실제 옆자리 꼬꼬마에게 아이폰 5를 도둑 맞은 전례가 있는 터라 다른 시간은 몰라도 첫 차가 시작되는 5시 정도에는 깨어 있는 센스가 필요하다.


자, 이제 브런치를 그만 쓰고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근데 12시도 안됐는데 왜 눈 앞에 요정이 나타나는..거지... 아직 커피를 안 먹어서 그런 걸까. 커피는 속이 쓰리니까 잠시만, 아주 잠시만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야지. 마음을 가다듬고 나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 


우주의 힘을 

모...으...면.......


아..몰... 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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