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ry Jun Aug 16. 2015

빙벽이 녹은 후 글이 남는다

빙벽이 백탄의 불꽃에 녹아 물방울로 떨어질 때 글은 만들어진다.

지금 목뼈가 무척 아프다. 며칠 전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뭔가 삔 느낌이 들면서 귀가 멍멍해지더니만 이제는 왼쪽 어깨와 팔까지 화끈거린다. 마치 불화살을 맞은 것처럼 뜨겁고 아리고 힘도 빠진다. 이런 증상을 SNS에 올렸더니 지인 왈 목 디스크의 전조라고 조심하라고 한다. 


뜨거운 느낌 때문에 그런지 잠이 찾아오지 않는다. 두 눈은 초롱거리는데 몸 왼쪽은 그 초롱거림을 다른 형태로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바로 글쓰기다. 뭔가 글을 쓰다 보면, 중얼거리다 보면 잠이 편안히 올 것 같은 믿음이 마음속에 피어난다.


내게 글쓰기는 불火이자 물水이고 또한 얼음氷이다. 얼음으로 가득 찬 빙벽을 오르는 느낌처럼 구조적이고 단단하게 다가오는터라 글을 쓸 때면 어떻게 눈 앞의 거대한 면을 녹이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한 손 한 발씩 조금씩 움직이는 행동이 내뿜는 온기가 얼음을 조금씩 물로 치환시키며 나는 높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녹은 얼음 물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내는 '또록' 소리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목표를 향해 가는 그 중심에는 작은 불꽃이 있다. 글자로 단어를 만들고 단어로 어절을 만들며 어절로 문장을, 문단을 세워 글 한 편을 완성시키는 백탄 속 정념의 불꽃 말이다. 어느새 빙벽이 녹아 있는 자리에는 글이 놓여 있다. 촉촉한 상태로.


이런 얼음을 느끼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이건만 지금 내게는 마냥 스스로 타 버리는 불꽃밖에 없나 보다. 왼손이 뜨겁다 보니 글로 무언가를 계속 내뱉으며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앞장선다. 빙벽에 아직 다가서지도 못했는데 불꽃이 나타나니 세상은 조금씩 말라가고 바람에 급하게 술렁이며 들판에 퍼져나간다. 문득 랩탑의 금속 부분이 뜨겁다. 이 온도와 비슷한 무언가가 내 몸 왼쪽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건 단지 모든 걸 태워버리다 스스로 사라지는 불바다일 뿐이다. 빙벽을 녹이는 염炎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스럽게 몸 안 불꽃의 온도가 낮아지고 있다. 오늘 내가 남긴 건 글이 아니라 불의 흔적이다. 잠에 들어도 된다는 허락의 표식일 테지. 이렇게 하루 밤이 마무리된다. 빙벽을 녹이지 못한 게 못내 아쉽지만 내일은 또 다른 불꽃이 생겨나니까.

작가의 이전글 책에게 버림받은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