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며칠 전, 중고서점에 갔다. 다른 작가의 책과 촉이 오는 시집을 사려했지만, 그 전에 방문했을 때 있었던 책은 다른 누군가가 선점하여 데려간 듯 없었고, 시집은 하나 같이 끌림이 없었다. 그렇게 이십여분 여기저기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제목과 표지가 예뻐 집어 들었다. 동행한 지인은 이 책이 일본에서 무슨무슨 문학상 같은 것을 탔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제목과 표지가 예뻐서 구매대 위에 이 책을 얹었다.
책을 가져와서 읽는데는 순식간이었다. 말랑말랑한 표현은 읽힘에 걸림이 없었고, 매 파트가 끝날 때 마다 치유와 기적, 가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한 나를.
편모슬하에서 할머니 손에서 누나와 고모와 함께 자랐다. 가장 역할을 해야했던 어머니는 성격에도 맞지 않는 호랑이를 연기하며, 날개달린 호랑이가 되었고 할머니는 늘 호랑이 어머니의 방패막이 되어주셨다. 누나와 내가 자라고 나니, 호랑이의 날개는 꺾여있었고, 이빨과 발톱도 빠져있었다. '왕년'의 호랑이를 막아내던 방패는 긁히고 깨져, 뾰족하고 모난 파편이 방패 안팤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것이다.
어디선가, 가족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지 말아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족이라는 천륜아래, 대화는 적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는 일은 쓰레기통 역할을 맡은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고모와 누나와 나는 각각 나름의 상처투성이가 되어 방치되고 살아내고 있었다. 이따금 가벼운 말으로도 상처가 벌어졌고 피가 흘렀다. 그럴때면 다들 울부짖었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서도 사는 거리를 조금 떨어뜨리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사회생활 중단 선언과 늦은 대학원 진학으로 타지에서 홀로 연명하여, 피튀는 감정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왕왕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곤 한다. 이 책은 묻는다.
너는 가까운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를, 어떻게서든 치료하고는 있니?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성인식', '언젠가 왔던 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멀리서 온 편지',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때가 없는 시계' 등 오기와라 히로시의 6편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2016년 제155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나는 이 작가가 <회전목마>와 <유랑가족 세이타로>작가 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글 감성이 너무 다르다는 기억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글 풍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번역본을 읽는 입장에서 글 풍은 옮긴이인 김난주의 작품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단편마다 주인공들은 어떠한 경위에 의해 가족들로부터 상처받고 이를 품고 지낸다. 그 상처로 아파하고, 갈등하고, 힐난하면서도 결국 가족과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다.
여기서 하나, 하늘도 오늘은 스카이 에서 결국 아카네는 폴리스 아저씨의 핸드를 잡고 마미에게 컴백하고, 포레스트는 폴리스 아저씨의 도움으로 매맞는 일이 없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카네의 마미가 폴리스 아저씨와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엔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한 독자 개인의 아쉬움도 남는다.
더불어, 이 책이 단편들의 모음임에도 불구하고, '오기와라 히로시 단편집'이라던가 '멀리서 온 편지'라던가 하는 제목이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는 나와 같은 기분으로 읽어낸 독자라면 알 것 같다.
치유계 소설이라고 하면 단연 요시모토 바나나가 떠오른다. 키친이라던가, NP, 도마뱀 등등.. 요시모토 바나나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은 것들 중에는 도마뱀을 가장 마지막에 읽었다. 치유계 소설 특성상 주인공의 상처를 그려내는데... 너무 아프게들 그린다. 이런 작품들이 픽션이라 다행이라는 별 쓸데없는 생각이 덧붙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