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내 생일을 잊어본 게 몇번째더라. 분명 저번주까지는, 아니면 며칠전까지... 뭐 그렇게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날에 딱 잊어버리는 그런 해가 몇번 있었다. 그 모든 해가 서른을 넘고, 마흔으로 달리던 중에 몇 번. 물론 당일에는 가족이라는 포근한 이름에 기대어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냈다. 그런 감사한 생일들이 쌓여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이번 생일을 앞두고 몇몇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실천으로 이어진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남들에겐 별 것 아닌 하루일 수 있도록, 내 생일 알리지 않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일이라는 익숙한 날짜들에 선물이라는 인사치례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퍼다 준 것들에 대한 답이 없어지는 해가 잦아지고, 그러면서 혹여 누군가가 베푼 호의에 대해 그 답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를 자신에 대하여. 그런 해가 쌓여가며 서운함이 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나는 이 사람과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로 만들어 버리고 있구나. 그런 부담스러움이 내 생일을 담은 달이 차오르면서 생일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달칵- 소리도 없을 스마트폰 화면을 몇번 터치함으로써 내 생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느 때 처럼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초 저녁. 전화가 왔다. 아이의 저녁을 차리고 있던 터라 의아해하며 받은 전화는 어머니였다.
- 저녁에 뭐해? 있다가 밥 먹자.
와이프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근처에서 밥먹자는 어머니의 전화.
- 갑자기? 왜?
라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
- 내일이 니 생일이잖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 내 생일이구나.
서른이 넘고 몇번 안되는 하루 중에 오늘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생일날 아침, 아내와 아이에게 생일축하한다는 인삿말을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오전에 이웃을 초대해서 오찬모임을 약속했었다. 부랴부랴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등원했다. 새 집으로 이사한 우리를 축하해주러 오는 소형 집들이 같은 오찬 모임. 집 소개와 함께 간단한 식사와 디저트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늦은 출근. 아내와 격일로 수업하는 학원이라 생일인 오늘은 내가 일하는 날이었다. 생일인 티를 낼 것도 없는 평범한 평일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웃고, 꾸중하고 응원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전화가 왔다. 정말 반가운 이름이었지만 수업때문에 부재중으로 넘겼다.
이어지는 수업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특식이 차려져있었다. 평일에서 생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부재중으로 넘어간 이름이 기억이 났다.
- 어! 오랜만이야. 일하느라. 응, 그래 학원. 말 안했나? 응.
평범한 안부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하는 그녀석의 말이,
- 왠지 퇴근하는데 날짜가 너무 익숙하더라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긴가 민가해서 카톡도 확인했는데, 안뜨더라고.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는데 딱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전화했지.
내 결혼식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녀석은 멀찍이서 나와 와이프 사진만 찍고서 거금을 투척하고 식사도 않하고 도망간 녀석. 그 뒤로 녀석은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나는 두 가족이 세 가족이 될 때 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땅을 찾아가지 못했다. 빈 집이라도 있으면 어찌저찌 가겠는데 하는 핑계로 멀찍이 두었던 곳에 아직 녀석은 익숙한 날짜와 나를 연관지을 만큼 나의 과거에 살아있었다.
조만간에 고향에 한번 내려가야겠다.
덧붙이자면, 나도 그 녀석 생일은 그냥 딱 외우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