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복숭아 Mar 03. 2021

하이스쿨에서 베프와 우정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이 글은 영화 <북스마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쓴 <레이디버드> 리뷰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려나. <레이디버드> 속 ‘줄리’를 위하여, 그리고 ‘줄리’였고 지금도 ‘줄리’이며 앞으로도 ‘줄리’일 이들을 위하여 쓴 리뷰였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줄리’를 연기했던 비니 펠드스타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북스마트>가 개봉해버렸고? 거기다 <레이디버드>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게다가 청춘 코미디물? 이걸 안 볼 수는 없지.



북스마트Booksmart는 책으로만 모든 것을 배운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 ‘몰리(오마이갓, 이름도 ‘줄리’랑 비슷하잖아)’와 ‘에이미(케이틀린 데버 분)’ 말 그대로 책으로만 모든 것을 배운 이들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인싸 되는 법은 책으로 배웠어요”라고 나와 있기도 하고…….


뭐 여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몰리’와 ‘에이미’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단짝 친구로서 죽어라 책을 파고든 끝에, 마침내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자기들이 노력에 대한 성과를 이루었다 생각하며 주변의 까불거리며 노는 이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둘. 그러나 졸업식 하루 전날 이 둘은 깨닫고 만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오로지 공부만 붙잡았던 자신들과 달리, 이제까지 깔봤던 아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예일대에 입학하거나 구글에 입사제안을 받는 등 공부와 재미(혹은 추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단 사실을. 그래서 이들은 하루 전날 화끈하게 놀아버려 학교에 전설을 남길 생각을 하는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줄거리에 대해서 쓸 건 아니다. 재미없잖아요, 그런 건. 그냥 영화 보고 오면 되는데. 되게 재밌으니까 꼭 보시고. 제가 할 이야기는 하이스쿨High School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리뷰를 썼던 <퀸카로 살아남는 법>도 그렇고, 이런 하이스쿨물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영화뿐 아니라 소설도 좋아하고. 동북아시아의 한 구석에 살고 있던 소녀에게, 이런 류의 영화나 소설은 판타지를 읽는 것과 비슷한 감각을 주었습니다. 항상 상상했지요. 내가 이 안에 들어가서…… 이 멤버 중 한 명이 되면…… 얘랑 마음이 잘 맞을 것 같고…… 나는 왠지 얘를 좋아할 것 같고…… 졸업식 파티 땐 이런 옷을 입었을 것 같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는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내가 현실의 하이스쿨에 들어가게 된다면? 공부도 못하는 그냥 찐따 아시아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학교 식당 가장 구석지고 추운 곳에 혼자 앉아서, 아이들은 잘 먹지 않는 가지구이 같은 걸 먹고 항상 존재감 없이 다니며,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고 성적은 늘 하위권을 맴도는. (사실 커티스 시튼펠드의 소설 <사립학교 아이들>을 읽은 뒤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네요. 너무 현실적이라 영상화가 안 되는 걸까나.)



여하튼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스마트>처럼 좋은 하이스쿨물을 보면 저는 또 환상을 갖게 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찐따라도 ‘에이미’와 ‘몰리’처럼 모든 부분에서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왜냐면 이 둘의 관계가 너무 부러웠거든요.



모든 것을 공유하고 언제 어디서든 이상한 짓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 학교에 가자며 나와서는 로봇 댄스를 추면서 쿵짝을 맞출 수 있는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었어, 사랑해” 등의 애정 표현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 자신의 자위 도구를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이런 작품들을 많이 보고 좋아했던 덕에,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베스트 프렌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느라 때론 싸우기도 하고, 누굴 상처주기도 하고, 반대로 멋대로 기대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만들어서 결국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고요.  



물론 <북스마트>가 그런 류의 영화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아무리 베프라고 해도 우리는 결국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나일 뿐,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어서 더 좋게 남았지요. 이것은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진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나를 완전하게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저와 모든 것이 똑같은 쌍둥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그렇지만 사실 저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런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요. 사실 나를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일은 오로지 내 자신만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죠. 왜냐면…… 내 자신은 너무 싫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제가 아는 친한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북스마트>는 그런 영화예요. 친한 이들을 불러놓고 맥주를 궤짝으로 사다 둔 다음, 쉼 없이 술을 들이키며 떠들고 깔깔거리면서 봐야 하는 그런 영화! 한 칸씩 띄어 앉은 영화관에서 혼자 마스크 속 웃음을 지으면서 볼 영화는 아니란 말이죠.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만남이 힘들 것 같아서, 조금 씁쓸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다들 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