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T. 콜먼 저,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서평
갈등 해결 분야의 전문가인 컬럼비아대학교 피터 T. 콜먼은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통해, 심각하게 분열된 갈등(가령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 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들이 모색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제시한다.
이 책의 5장(143면)부터 10장까지는 '재설정하기', '강화하고 부수기', '복잡도 높이기' 등 갈등의 해결책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그 전까지는 갈등의 원인, 갈등을 유발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갈등 유발 요소와 관련하여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어트랙터(attractor)'이다. 어트랙터는 3장 4번 각주(384면)에서 알 수 있듯이, 콜먼 박사의 이 책 이전에 1990년대 중반부터 Robin R. Vallacher, Andrzej Nowak 교수의 '동적 사회 심리학', '동적 시스템 이론' 관련 저술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보인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2007년에는 콜먼 박사와 위 2명의 교수가 함께 공저한 논문도 있는 것 같다.
어트랙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시스템(예를 들어 두뇌, 신체, 관계, 집단, 지역 사회, 국가, 은하계)에 형성되고 굳어져 변화에 저항하는 패턴이다(87면). 저자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 의회에서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고질적인 반대투표 패턴을 생각해보라. 이와 같이 강하고 오래된 패턴을 변화를 거부한다."고 예를 들었는데,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질적이고 오래된 패턴을 통해 대척점에 서있는 여러 갈등 집단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트랙터의 영향력은 그것이 '집단성'을 가진다는 데에 있다. 어트랙터가 단지 소위 말하는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의 패턴 또는 경향성이었다면, 그것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 감정, 행동, 사회적 집단형성의 패턴은 이런 패턴의 영향을 미치는 복잡하고 수많은 요소의 상호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어트랙터가 대체로 변화를 거부하는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패턴이 다수의 요소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요소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를 강화한다.
-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87면
복잡다변한 어트랙터를 상세히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어트랙터 개념은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부연하자면,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갖게 된 의견은(그것이 비록 내가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단순한 원인 - 결과에 따른 것이 아니고 내가 모르는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너는 틀렸어!"가 아니라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1) 어트랙터의 요소 - 텍스트(규율)
어트랙터의 복잡성을 감안한다면, 그것을 분석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트랙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가장 영향력이 높은 것이 바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텍스트'가 무엇일까, 쉽게 예를 들자면 중세시대의 '성서'를 떠올릴 수 있다. 이 '성서'는 가톨릭 권력층의 지배 도구였고, 수많은 중세 농민들의 삶을 규율하는 절대적인 진리이자 지침 그 자체였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하며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시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텍스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현대사회에서 '텍스트'라는 어트랙터 요소는 1차적으로 법'과 '교육'이라는 규율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세 시대에 성서의 내용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주된 규율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규율은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교에도, 군대에도, 회사에도,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규율은 존재한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여러 규율들을 배우고 익히기 때문에 규율은 매우 자연스러운 성질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이의 없이 이에 순종하며, 규율에 대해 순종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일로 여겨진다.
2) 규율을 통한 낙인화
규율은 알게 모르게 ‘정상’을 정의하고, ‘비정상’을 배척한다. 또한 규율이 정의하는 그 ‘정상’들의 개념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정상인’의 개념, ‘정상적인 상태’의 개념은 모두 ‘규율에 대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미묘한 규율의 틀을 벗어나면 그 사람은 일탈자가 되는 것이고,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러 규율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타인을 평가하고,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인’들을 측정하고 통제하고 교정하는 것. 이것이 권력의 작용이라는 것을 사회의 대다수는 아마 모른다는 것이 권력의 ‘은밀하고도 합리적인 지배전략’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가톨릭 권력이 성서의 해석에 따른 판단과 지배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들을 통제하였듯이, 과거,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도 권력은 규율을 통해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사람들이 ‘정상’의 길에 서게끔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로 그들을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규율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자연스레 ‘비합리적인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다.
3) 갈등 주체로서의 공동체의 형성
현재 시점에서 규율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규율'의 중앙집권적 성향이 약화됨에 따라 법과 교육의 권위가 약해졌다. 다양한 의견과 가치관이 주장되고 섞이면서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는 긍정적인 모습도 나타났다. 반면 갈등은 더 복잡해졌다. 이젠 정상인 vs 비정상인, 다수 vs 소수의 갈등 국면이 아니다. 여러 갈등 집단들이 거의 대등해보이는 파워로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낸다. 최근 문제가 되는 20대남 vs 20대녀의 갈등 구조를 한 번 보면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우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젠 비교적 소수로 보이는 집단이나 개인도 더이상 숨거나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정치와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갈등의 복잡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려움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생각이 다른 여러 갈등 공동체가 피해의식에 기반해 자신의 공동체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그리고 이런 모습에 사회가 속수무책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면 갈등의 해결은 요원해질 것이다.
이런 복잡해진 사회, 복잡해진 갈등 상황에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가르침은 지금도 상당 부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나는 왜 지금의 나처럼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절대선이 아니고, 내 생각과 의견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전의 여러 경험이나 환경에 뿌리를 두는 것일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충분히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나 또한 환경과 경험이 바뀌면 지금과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뒤를 한 번 돌아보는, 뿌리를 한 번 거슬러올라가보는 사고방식(철학적 연구방법론으로는 '계보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현 시점의 모습도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어트랙터를 악용하는 정치인들, 갈등상황을 조장하고 그것을 자신의 영향력에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정말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부디 여야 상관 없이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장과 전략에 대해 지양하는 콘센서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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