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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un 12. 2022

<1984>의 재현?

- 조너선 E. 힐먼 저, <디지털 실크로드>에 대한 서평





이 책의 중심 제목이자 중심 주제인 '디지털 실크로드'는 일대일로 계획의 일부로서 첨단 기술 분야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를 진전시키는 발판 역할을 한다. 시진핑 주석은 2025년까지 5G 시스템, 스마트 시티, 클라우드 컴퓨팅, 기타 디지털 플젝트가 포함된 '새로운 인프라'에 1조 4000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지시했는데, 실로 무시무시한 수준의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서방서계에서는 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를 약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레이건은 "빅브라더 중의 빅브라더(물론 이는 중국이 아닌 소련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가 통신 기술 앞에서 점점 무력해지고 있다"고 자랑했으며(p.16.), 빌 클린턴은 중국의 WTO 가입을 옹호하면서 "새로운 세기에는 휴대전화와 케이블 모뎀을 통해 자유가 확산될 것이다. 그게 중국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상상해 보라"라며 "중국은 인터넷을 단속하려고 하겠으나, 그건 물컹한 젤리를 벽에 못으로 박아놓으려는 것과 같을 것이다"고 말했다(p.26.). 그러나 웬걸? 중국은 클린턴이 '물컹한 젤리를 벽에 못으로 박아 놓으려는 것'이라고 표현한 불가능해보이는 그 일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조지 오웰의 그 유명한 <1984>에 등장하는 '오세아니아' 제국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20세기 후반에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평이 많았다. 특히 1991년 소련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더더욱 그러한 의견이 지배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생존에 성공한 중국이, 그것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차 '오세아니아'제국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은 항상 시민들을 지켜봤지만, 이제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그들 삶의 깊숙한 곳까지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노골적인 목표는 모든 공공장소와 모든 얼굴을 완벽하게 감시하고 그 데이터를 다시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네트워크화되고 항상 작동하며 완벽하게 제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서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업계 최고의 분석가인 찰스 롤렛은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비디오 감시를 위한 최고 수준의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2020년 말까지 중국은 6억 2,600만 대의 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인데 이는 인구 2명당 1대 꼴이다.

- 디지털 실크로드, p.150.


<1984>에서는 감시의 기술적 도구로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텔레스크린은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센싱’ 및 ‘네트워킹’ 기술이 구현된 사물인터넷기기라고 볼 수 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가능하다. 이 기계는 숨죽인 속삭임을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윈스턴이 이 금속판의 감시 범위 안에 있는 한, 소리는 물론이고 행동까지 감지된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사상경찰이 개개인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행하는지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1984, p.11.


텔레스크린은 당의 소식이나 뉴스를 전하는 기능 및 빅 브라더와 당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모든 당원들의 집에 설치되어 있다. 텔레스크린의 존재는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 개인이 당을 욕하고 당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당의 의지를 나타낸다.


빅 브라더와 당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 제국에는 ‘법’이 없지만 ‘사상죄(thoughtcrime)’와 ‘표정죄(facecrime)’가 존재한다(이것만으로도 근대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가령 표정죄의 경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ex. 승전 소식이 보도될 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문제는 텔레스크린이 당원의 집에 설치되어(특히 당원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원의 사적 공간에서의 사상과 표정까지 감지하고 분석하고 불순분자를 색출한다는 데에 있다. 텔레스크린의 존재로 인해, 모든 당원들과 그들의 가족은 단 한순간이라도 당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당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당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진심’이 아니라면 표정에 드러나기 때문에 바로 표정죄로 잡혀가기 쉽다. 윈스턴은 최대한 당에 충성을 다하는 척을 해보았지만, 당의 치밀한 감시를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그의 반당(反黨)적 사상은 누출되고 말았다.


빅 브라더와 당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 제국처럼,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통신네트워크와 사물인터넷 등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로 대중을 감시하고 검열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약 200만 명의 인터넷 검열관을 고용해서 인민해방군의 현역병 규모와 비슷한 수준의 온라인 콘텐츠 군대를 만들었으며, 이들의 권한은 콘텐츠를 차단하고 삭제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된다. 정치학자 마거릿 로버츠와 그녀의 동료들은 중국 정부가 1년에 4억 4,800만 개의 SNS 댓글을 가짜로 조작해서 정부 입장을 지지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p.220.).





그들은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을 계량화하고 있다. 

- 디지털 실크로드, p.155.


사실 권력이 지배대상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고, 계량화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근대 권력의 특징'으로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의 스카이넷, 매의 눈이 등장하기 한참 이전부터 '감옥', '학교'와 같은 근대 제도와 시스템들도 개인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역할을 해왔다. 


<감시와 처벌> p.311.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의 설계도.


그러나 중국이 무서운 점은, 중국이 미국의 뒤를 잇는 초강대국이라는 점과 중국의 기술력과 인프라가 세계 곳곳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대에도 중국보다 더 악랄하고 노골적으로 국민을 핍박하고 통제하는 독재국가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바로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조너선 E. 힐만은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 동료 민주주의 국가들이 연대하여 중국과의 기술경쟁에서 승리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편만을 들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될수록,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더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eg. 사드배치 이슈). 


세계를 연결하고 미래의 패권을 손에 넣기 위한 중국의 광폭 행보, 중국의 바로 이웃에 위치해있는 우리나라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는 다르다는 점이다. 수많은 선진국들이 러시아를 규탄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행하고 있으나 과연 중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인권 문제 등)에도 동일한 집단 행동이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속 My Way를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243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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