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상 +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irky Nov 01. 2017

정원 로봇 이야기

10년 전, 우리 동네에 Urban farm, 도시농업이 한창 붐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파트 베란다가 정원처럼 되어 있지도 않았고 집에서 토마토나 상추를 키우는 것이 도시농업의 전부였다. 자급자족에 그치던 도시농업이 옥상 등 콘크리트 공간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단지별로 보다 확장되고 다양해졌다. 농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금이 주어졌고 얼마 안 되는 양을 참여율에 따라 분배할 때에는 주민 간 싸움이 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람 대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비료도 주는, 가드닝에 적합한 로봇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25년 현재, 이와 관련하여 많은 정원 로봇들이 대중에게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집안을 청소해주고 거동을 도와주는 로봇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각 가정의 부족한 식량공급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로봇이 농촌에도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지방으로 국가기관이 모두 이전되고 농촌에도 아파트나 상가 등이 들어서며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결국,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게 되면서 농촌은 서서히 활력을 잃어갔다.


창조경제를 강조하던 정부에서는 농촌의 인력 충원을 위한 아이디어 기술사업의 일환으로 정원 로봇을 각 지역에 대량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고령의 노인들은 힘들게 땡볕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방제(防除)나 시비(施肥) 작업도 정원 로봇 덕에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각 마을의 노인들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는 정원 로봇을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정원 로봇으로 인해 많은 인력이 필요 없게 된 농촌은 외국인 근로자 등 남은 인력들도 모두 떠나가게 되었다. 노인들도 고령이 되어 세상을 뜨게 되면서 농가의 수는 급격하게 줄고 많은 대지들은 다시 황량하게 방치되어갔다.


이때, 대량 식량보급에 관심이 많았던 대기업에서는 각 개인농가의 대지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에서 정원 로봇으로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계 회사에서도 앞 다투어 농가의 대지들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외국계 회사가 ‘몬산다(Monsanda)'다. '몬산다'는 슈퍼사이즈 GMO 농산물을 개발 중이었는데 이를 대량 재배하기 위해서 많은 농촌의 부지를 그들의 시험장으로 확보해나갔다.


정원 로봇이 '몬산다'의 GMO 농산물 재배에 이용되면서부터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원 로봇이 종자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걸 해주었기 때문에 농촌의 남은 소수의 인력들은 대부분 '몬산다'에 소속되어 로봇 관리인이나 수리공으로 전락해버렸다. 정원 로봇의 증가와 함께 GMO 생산량도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GMO 제품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들이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 몸에 대한 유해성이 확실하지 않다고도 하고, GMO 제품이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아토피는 심해졌고 면역력이 약해져 가면서 시민단체에서는 끊임없이 유전자 조작 제품에 대한 유해성을 제기하고 많은 논란이 거세졌다.

더 큰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GMO 작물의 재배면적이 늘어나게 되면서부터다.

바람에 의해서, 곤충에 의해서, 씨앗이 날라 오거나 교잡(交雜)되어 각 산지, 식물원, 결국에는 내가 재배하고 있는 우리 집 정원, 아파트 옥상정원에까지도 유전자가 조작된 품종이 유입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변종(變種)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 흔하게 재배했던 ‘고구마’마저 멸종위기종이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정원에 있는 교잡종들 대부분에는 돌연변이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열무가 머리만 해졌고, 뒤뜰에는 심지도 않았던 팔뚝만 한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번식력이 너무 강해 농약을 쳐도 뿌리까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있는 정원 로봇은 정원 일을 정말 잘하지만 이런 교잡종들을 완벽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 녀석은 자기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잎만 뜯고 뿌리를 남겨두어 잡초를 더 무성하게 번식시키고 있다. 한 대 때리고 싶지만 비싼 수리비 때문에 참는다.


이제 우리 아파트 옥상에는 온실을 설치 중이다.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다른 동네에도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온실을 설치하여 종(種) 간 교잡되는 것을 막고자 하고 있다. TV에는 원종(原種)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뒤늦은 공익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멸종위기 종 보존과 관련한 직업이 뜨기 시작했고 원예학, 식물학, 생물학과 입시는 다른 전공에 비해 경쟁률이 치열해졌다. 식물원, 수목원 등에서는 정원 로봇 대신 제초작업 등 로봇이 할 수 없는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 충원도 이루어졌다. 제초작업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다 보니, 제초 전문가가 유망직종으로 뜨기 시작했고 식물원 내 가드닝 프로그램에는 식물을 심는 법 대신 ‘돌연변이종 -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오늘, 뉴스에서 가장 빠르게 돌연변이종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농약이 개발되어 곧 시판될 예정이라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이 농약의 제조사가 ‘몬산다’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