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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만드는 희희 Sep 09. 2020

'교정교열'이 무엇인가요?

2화. 피땀눈물의 교정교열 (1)


이전 직장 선배가 소개해주고 싶은 편집자 후배가 있다며 술 한잔하자는 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앞서 걷는 사람의 손에 들린 천가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드럽게 반이 접힌 A3 사이즈 종이 뭉치가 얼핏얼핏 보였거든요. 아무래도 원고 교정지[1] 같았어요. '편집자인가...?' 호기심이 생겨 천가방에 시선을 둔 채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의 목적지였던 술집으로 쏙 들어가는 거예요. 뒤따라 가게에 들어서니 선배 앞에 그 천가방의 주인이 앉으려던 참이었어요.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역시, 편집자였어.'


[1] 교정지란, 원고를 출력한 종이를 말합니다. 이때, 책으로 펴내고자 하는 디자인에 맞게 원고를 배치해 출력했다는 게 포인트예요.


임진아 작가님의 <사물에게 배웁니다> (위)는 PDF교정지, (아래)는 출간된 책이에요.



홍대역과 합정역 부근+가방 말고 여분의 천가방을 든 사람이 있다면+게다가 그 안에 A4나 A3 종이 뭉치가 담겨 있다면, 그 사람은 편집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종이 교정지 대신 PDF 파일을 아이패드에 넣어 보는 경우가 많아져서 예전만큼 자주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요즘도 출퇴근 길에 간혹 발견하곤 해요. 그럴 때면 공감과 위로의 텔레파시를 등 뒤에 쏘아대곤 합니다 ) )) )))) )))))))) 교정지를 들고 오가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요.



후남이는 원고를 들고 다닐 때 주로 종이봉투를 사용합니다.


교정지는 '교정-교열'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교정 2 校正 [교ː정]
교정쇄와 원고를 대조하여 오자, 오식, 배열, 색 따위를 바르게 고침.

교열 2 校閱 [교ː열]
문서나 원고의 내용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며 검열함.

으음? 뭐가 다른가 싶죠. 보통 '교정교열'이라고 함께 불리거나, '교정'이 '교열'의 의미까지 포함해서 쓰이는 등 두 작업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굳-이 나눠 설명한다면 '교정'은 틀린 글자, 부호,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교열'은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비문), 잘못된 사실 등을 바로잡아 고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 밖에도 교정교열 단계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요소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들과 딸>에서 후남이가 빨간 펜이나 색연필로 무언가 쓴다거나, 두꺼운 국어사전을 팔랑이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교정교열 작업입니다.



네 장의 사진에서 빨간 색연필과 사전, 말고 또 하나 공통점을 찾는다면? > 거북목 메이드 자세


편집자에게 교정교열은

+회색 글자는 다음 편에 다룰 내용들입니다.


'교정교열'에는 재밌는 구석이 많습니다. (재밌지는 않습니다). '정답'이라고 부를 만한 게 거의 없는 출판 편집자의 일에서 그나마 맞고 틀린 게 명확한 부분이 많은 일이지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의지해 매 순간 선택하고 판단해야 하는 안개처럼 불투명한 면도 있습니다. -> "누가 내 원고에 손을 대?!"


누구나 학습과 경험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 같은 속성이 있는가 하면, 기본기가 없으면 무엇을 교정교열할지 파악조차 못 하기에 감각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숙련된 10년 차든 일주일 된 신입이든 일정 시간을 반드시 투입해야 하는 공평한 면도 있습니다. 국어사전 없이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그렇네요. -> "엄마 아빠 빼고 아무것도 믿지 마세요. 아니, 엄빠도 믿지 마세요."


책을 만들 때 꼭 거쳐야 하는 중요+주요 과정인데도 출판사의 업무 중 가장 활발하게 아웃소싱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 "숨어 있는 조력자들 '외주 교정자'"


무엇보다도 각종 '사고'의 원인이 교정교열 단계에서 싹을 틔운 경우가 많기에 피땀눈물 지분이 큰 것 또한 중요한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 "파주는 춥고, 책 창고에는 난로가 없습니다"


편집자마다 교정교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목격한 적은 없지만, 구전으로 들었던 어느 신입 편집자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이에요. (혹시 무슨 말이지? 싶다면 영상 아래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

 

"틀린 건 지우고 고쳐놓는 게 깔끔할 것 같..."


신입 편집자가 이렇게 호되게 혼나는 이유! 교정지에 교정교열을 볼 때는 틀린 부분이 잘 보이도록 지우고(!) 수정해야 합니다. 어디를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야 하거든요. 그래야 1) 디자이너가 교정지를 보며 파일에서 글자 수정을 할 수 있고요. 2) 나중에 작가에게도 이 부분을 이렇게 고쳤다고 보여줄 수도 있지요. 그런데, 깨끗하게 수정한다고 수정액으로 싹싹 지웠으니! 두둥!!! 이 두 사람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해요. 다음 편에서도 소개해드릴게요!




영상 출처

<아들과 딸> 옛드 :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로맨스는 별책부록> 디글 : Di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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