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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Jan 14. 2023

구매지원

EPC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인 구매

"윤 과장"


"네, 송영신 부장님"


플랜트사업본부의 HVAC 시공팀을 이끌고 계시는 송영신 부장님이 부르셨다. 송영신 부장님은 나와 같은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같은 발주처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없고, 평소에 일할 때도 인자한 표정으로 자주 웃으시고 농담도 잘하셔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분이다. 나도 같이 일해본 적은 없지만, 평소에 굉장히 친절하게 잘 대해주셔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배이다. 게다가 회사 내에서는 일처리를 깔끔하게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라서, 평소에 어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송 부장님을 찾아가서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응. 새로 들어간 프로젝트에 일은 잘되고 있어?"


"아, 네. 서울사무소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윤 과장이 서울사무소가 처음이었어? 아~~ 그동안은 문제 있는 현장에 소방수처럼 갔었구나?"


"아, 네. 그랬었죠."


"그럼 구매절차에 대해서는 좀 알아?"


"아뇨. 잘 모르죠. 안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설계팀에는 MR 진행사항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고요."


"그래? 그쪽 구매담당자도 우리와 같을 거야. 구매실에 김형규 과장이라고 있거든. 그 친구한테 물어서 필요한 서류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MR이 승인받으면 바로 구매실에 구매요청을 보내야 하거든."


"아, 그렇군요. 바로 문의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응. 그래. 열심히 해서 나한테도 좀 알려줘. 나는 한참 후에야 구매를 진행할 거 같아. 우리 쪽 MR은 승인받으려면 아직도 멀었거든."


"당연하죠, 부장님. 제가 먼지 가면서 필요한 게 뭐가 있는지 정리해서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형규 과장님. 저 사우디 프로젝트 HVAC 시공담당자인 윤성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윤 과장님.” 


“네. 제가 구매의뢰서를 구매팀에 보내려고 하는데,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네, 어떤 부분이 궁금하세요?” 


“아, 제가 구매 쪽 일은 처음 하는 거라서 잘 모르거든요. 구매의뢰서를 보내려면 어떤 것들이 먼저 필요하죠?” 


“MR(Material Requisition)은 발주처 승인을 받았나요?” 


“Comment 몇 개 수정해서 며칠 전에 발주처에 제출했다고 설계팀에 확인했습니다. 아마 이번에는 발주처에 승인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Comment 없이 승인받은 MR과 납품일정(Delivery Schedule)을 ERP에 등록하시고, 구매의뢰서는 결재받아주시면 됩니다. ERP에 MR 등록하실 때는 보안해제하신 다음에, 발주처만 봐야 하는 부분은 다 지워주셔야 해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MR 승인받으면 바로 ERP에 등록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김형규 과장이 설명해 준 절차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MR 승인에 시간이 한 달은 더 걸릴 것 같아서 시간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제 품질팀에 문의해 봐야겠다. 아무래도 구매는 품질팀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시공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해야 필요 없는 지연을 막을 수 있는지 파악해두어야 한다. 구매는 HVAC 전체 예산 중에 절반이나 차지하기 때문에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모든 자재는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사성 자재는 자재승인원을 통해서 승인받아야 한다. 그리고 주요 기계 및 장치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MR을 발주처에 승인받아야 한다. MR은 보통 HVAC 설계 엔지니어가 작성하고 발주처의 승인을 받는다. MR은 구매를 위해서 필요한 요건 및 문서에 대해서 설명하는 문서로 기계 및 장치를 제작하는 Vendor가 제출해야 하는 문서의 종류 및 제출 기한, 제작 및 납품에 필요한 검사(Inspection)의 종류, 기계 및 장치와 함께 납품되어야 할 잡자재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다. 


발주처가 MR을 승인하면 시행사는 MR을 발주처의 승인 Vendor 목록(Approved Vendor List로 발주처에 등록되어 있는 프로젝트에 사용 가능한 Vendor 목록이다.)에 있는 Vendor들과 입찰을 진행한다. 그리고 Vendor들이 제출한 견적서를 토대로 TBE (Technical Bid Evaluation) Report를 작성해서 발주처에 제출 및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TBE Report에 대해서 발주처의 승인을 받은 후, 시행사는 기술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는 Vendor를 발주처에 ARR(Award Recommendation Request)라는 문서를 통해서 추천하고, 주처는 NOL (No Objection Letter)라는 문서를 통해서 해당 Vendor의 사용을 승인하게 된다. 시행사는 승인받은 Vendor와 계약을 체결하고 그 증거로 Vendor에 송부한 PO(Purchase Order)를 발주처에 제출해야 한다. 


PO를 제출한 후에 시행사는 착수회의(KOM : Kick Off Meeting)를 진행하여, 해당 Vendor가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며 Vendor와 협력을 시작하게 된다. 보통 착수회의 이후에 Vendor에게 주요 기계 및 장치의 제작도면(Vendor Data 혹은 Vendor Print)을 접수하여 발주처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제작도면은 IFR(Issue For Review), IFA(Issue For Approval), IFC(Issue For Construction) 등의 단계에 따라 승인을 진행하게 된다. IFR Revision의 제작도면을 제출하여 승인받은 후에 IFA Revision을 제출한다. 또 IFA Revision의 Vendor Data를 승인받은 후에 IFC Revision의 Vendor Data를 제출하여 승인받는다. 프로젝트 별로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 Vendor는 IFC 버전의 제작도면에 대한 승인을 받은 후에 제작을 시작할 수 있다. 


제작된 기계 및 장비는 Vendor의 공장에서 공장 검사 (FAT : Factory Acceptance Test)를 수행한다. 공장검사 동안 받은 주요 지적사항(Comment 혹은 Punch)들을 모두 해결하고 난 다음에, Vendor는 해당 기계 및 장비를 프로젝트 현장에 납품할 수 있다. 현장에 납품한 기계 및 장비는 Receiving Inspeciton을 진행하여 운송 중 손상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현장에 설치할 수 있다. 설치 후에 현장검사 (SAT : Site Acceptance Test)를 수행하여야 하고, 현장검사가 완료된 후에 시행사는 해당 기계 및 장치에 대한 시운전(Commissioning)을 시작할 수 있다.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가 바로 구매(Procurement)이다. 구매는 EPC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3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리고 구매가 잘못되면 현장의 설치나 시운전이 지연되게 되는데,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은 관련된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의 설계가 잘못되어 용량이 부족한 것을 시운전 때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시행사는 Vendor와 협조하여 제작 도면(Vendor Data 혹은 Vendor Print)을 수정하여 발주처에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 제작 도면에 대한 발주처의 승인 이후에 Vendor는 제작을 할 수 있고, 공장 검사(FAT)를 완료한 후에 납품할 수 있으며, 현장인수검사를 완료하고 현장에 설치할 수 있다. 현장 설치검사를 완료한 후에 현장검사(SAT)의 진행이 가능하고, SAT를 완료한 후에야 HVAC System에 대한 시운전이 가능하다. 보통 이런 과정은 최소 6~8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즉, 구매가 잘못되면 전체 프로젝트의 공사기간에 지대한 지연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 구매는 굉장히 신중하고 확실하게 관리해야 한다. 


구매를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구매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 관련된 부서 및 사람이 많고 업무 절차가 복잡한 것도 한몫을 한다. 프로젝트 매니저(PM)와 현장소장은 물론이고, 구매팀, 예산팀, 공무팀, 품질팀, 설계팀, 본사 구매품질팀, 시공팀 등 정말 많은 팀에서 협력해야 한다. 관련하여 협력해야 하는 담당자의 수는 더 많아진다. 본사 예산관리자, 프로젝트 예산관리자, 프로젝트 계약관리자, 본사 구매담당자, 프로젝트 구매담당자, QC(Quality Control) 엔지니어, QA(Qaulity Assurance) 매니저, Lead 설계 엔지니어, 설계 총괄 매니저, HVAC 공사 엔지니어 등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관여 및 결재가 필요한 것이 구매이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문서를 만들어서 발주처의 승인을 받고, 여러 사람들의 결재를 받아서 예산 승인, 품질 검토, 설계 검토, 구매 계약서 작성, 법무팀 검토 등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야 Vendor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HVAC 시공 엔지니어는 위에 언급한 거의 대부분의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 설계팀에 정보를 받고, 구매담당자에 MR 승인 현황, 현장 납품 일정, Vendor Supervisor 출장 일정 등의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또, 품질팀과 협의하여 품질과 관련된 모든 절차가 늦어지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시공 엔지니어가 MR 승인 등 모든 사전 준비가 완료된 후, 현장 소장 등 프로젝트 내부의 결재를 받아서 구매의뢰서를 구매실에 보내면, 구매실의 구매담당자가 법무팀의 협조를 받아서 Vendor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자세한 구매절차는 회사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나 전체적은 흐름은 비슷할 것이다.) 즉, HVAC 시공 엔지니어는 중간중간의 절차가 지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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