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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Jan 20. 2023

자재승인원

공사자재 준비의 시작

"네, 윤성지입니다."


"응, 윤 과장. 지금 바빠?"


건축팀장 김성욱 부장이었다. 현장 사무소에 자리가 가까워서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하는 사이인데, 갑자기 전화를 하신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뇨. 오늘도 현장 한 바퀴 돌아보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이제 커피를 마실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현장을 봤다니 더 이야기하기가 쉽겠네."


"네? 무슨 일이 있나요? 화장실 배관은 저희 협력업체가 잘 설치하고 있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요. Duct 설치는 아직 시간이 있는 것 같았는데요. 스케줄에서 Duct 설치는 2달 후에 시작하는 것으로 봤었던 것 같은데요."


"원래는 그랬지. 그런데 발주처가 빨리하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거든. 그래서 우리 쪽 인원을 늘려서 첫 번째 건물 내부 인테리어를 더 빨리 끝낼 거야. 그래서 Duct 설치를 다음 달에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그렇게나 빨리요? 아이고... Duct 설치에 필요한 자재들에 대해서는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는데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어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정을 바꾼 건데 뭐. 준비 잘해, 윤 과장. 여기 발주처 장난 아니야. 절차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진행을 못하게 하니까."


"알겠습니다. 부장님. 준비하다가 궁금한 거 있으면 여쭤보겠습니다."


"응. 그래. 수고해."


"고생하십시오, 부장님."


자재승인원 목록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Duct Sheet와 설치를 위해서 필요한 자재인 Angle과 Channel Support는 승인을 받아서 문제가 없었다. 협력업체에 Duct 제작을 요청하면 된다. 한 달이면 Duct 제작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Angle이나 Channel Support를 천장에 고정할 Hanger Rod와 Anchor Bolt에 대한 자재 승인을 아직 받지 않았다. 다음 달에 Duct 공사를 시작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관련 자재승인원을 제출해야 한다.


“여보세요. 저 한국건설 윤성지라고 합니다. 혹시 백수종 차장님 계신가요?” 


“아, 잠시만요.” 


“여보세요, 백수종입니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저 한국건설 윤성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과장님. 무슨 일로 연락하셨나요?” 


“건축팀이 공사일정을 더 당긴다고 오늘 갑자기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 달부터 Duct 설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네요. Duct 제작 시작해 주세요. 그리고 Hanger Rod랑 Anchor Bolt 자재승인원 준비됐나요?” 


“Duct 제작은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그런데 Hanger랑 Anchor 자재승인원은 아직 준비가 안 끝났는데요.” 


“제 생각에는 하루라도 빨리 발주처에 제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자재에 대해서 서류를 바로 준비해서 보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송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차장님.” 



해외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사용할 공사자재는 발주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문서가 바로 자재승인원(FMR : Field Material Request)이다. 보통 발주처는 사용할 제작사(Vendor) 목록(Approved Vendor List)을 가지고 있다. 시행사는 이 목록에 있는 제작사들 중에서 자재를 구매할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에 필요한 제작사가 발주처의 승인 목록에 없을 때는 제작사에 대한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발주처 내부의 절차가 복잡하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훨씬 빨리 진행해야 한다.  


자재승인원은 사용할 자재를 생산하는 회사의 카탈로그, 관련 시방서(Project Specification), 관련 도면(IFC), 제작사 ISO 승인문서 등을 첨부하여 공식문서로 Transmittal과 함께 발주처에 제출해야 한다. 발주처는 공식문서를 받으면 보통 근무일 기준으로 2주에서 3주 내에 답변하게 된다. 발주처는 제출된 공식문서를 검토하여 Approval without Comment, Approval with Comment, Correct and Resubmit, Reject 등 중 하나로 시행사에 답변을 보낸다. 자재승인원은 Approval without Comment, Approval with Comment로 발주처의 답변을 받아야, 현장에서 관련 자재 사용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문서 승인 기간이다. 만약에 제출한 자재승인원에 대해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문서를 수정해서 다시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한 번 제출한 문서에 대해서 답변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보통 근무일로 2~3주가 필요하므로, 최소한 한 달 반 전에는 자재승인원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자재를 사용하려면 자재 입고검사(Material Receiving Inspection)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보통 검사는 2일 전에 신청해야 하므로, 현장에서 어떤 자재를 사용하기 위해서 준비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최소 3주 3일이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화장실 배관, Duct 및 배관 Support 류, 볼트/너트 등 공사자재들은 자재승인원(FMR)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계 및 장치 등 중요한 품목들은 MR(Material Requisition)이라는 문서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즉, 냉동기, 공기조화기, 히터, 펌프 등 HVAC용 장비들은 MR을 사용해야 하며, 그 처리 절차가 FMR보다 훨씬 복잡하다. 물론 이 절차는 발주처마다 다르므로 사전에 관련된 절차를 품질팀에 확인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해외프로젝트를 잘 관리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절차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해외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재승인원과 같은 서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어떤 공사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시공 엔지니어는 필요한 자재가 어떤 종류가 있는지 미리 파악해서 자재승인원을 미리 승인받아야 한다. 자재승인원은 보통 협력업체가 작성 및 제출하므로 협력업체와 미리 협의해서 잘 관리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자재를 구매하는 절차는 발주처 별로 그 내용이 다르다. 처음 프로젝트에 발령받으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절차를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람코는 내가 경험했던 발주처 중에서 구매 절차가 가장 까다로웠다. 혹시 아람코 프로젝트를 처음 진행하는 동료 및 후배들을 위해서 그 내용을 아래에 간단하게 정리한다. 


아람코는 자재 종류에 따라서 사용할 문서의 종류 및 구매절차가 달라진다. 아람코는 공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의 종류에 9COM이라는 번호를 부여해서 관리한다. 이 9COM 목록에는 Inspectable과 Non-Inspectable이 표시되어 있는데, Inspectable로 정의된 자재는 MR을 사용해서 승인받아야 한다. 이 경우 MR을 승인받아서 TBE(Technical Bid Evaluation) Report를 제출해서 승인받고, ARR(Award Recommendation Request) 제출한 후 NOL (No Objection Letter)을 접수해야 발주를 낼 수 있다. 특히 MR 및 TBE Report는 Approval without Comment로 승인을 받아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어서, 최소 2~3번은 수정 및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공식문서 제출한 후에 발주처의 답변을 받는데 3주가 걸리므로, 2번을 수정해서 다시 제출한다면 MR승인에만 총 석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략적으로 MR 제출부터 NOL 접수까지 8개월 정도 필요하므로 Inspectable 자재들은 최대한 빨리 승인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람코는 모든 종류의 배관(metallic, Non-metallic), Cable Tray, 통신 케이블을 제외한 모든 Cable(광케이블은 Inspectable), 기계 장치 등을 Inspectable Item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Inspectable Item은 MR을 사용해야 한다. 즉, HVAC에서 가장 먼저 사용하는 화장실용 PVC 배관도 MR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아람코 프로젝트에 발령을 받으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Plumbing용 배관에 대한 MR 승인이다. 


서포트 설치에 필수적인 Anchor Bolt의 경우에는 대부분 Inspectable이나, 건물 내에 사용하는 Anchor Bolt는 Non-Inspectable인 9COM 번호가 있으므로, 그 번호를 사용해서 FMR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단, 철골이나 옥외에 사용하는 Anchor Bolt는 Inspectable이므로 MR로 승인받아야 한다. 


아람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재승인을 받지 못해서 공사를 착수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또 주요 자재는 승인을 받았으나, 설치에 필요한 잡자재를 승인받지 않아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전기팀의 경우 케이블 트레이를 설치할 때 필요한 볼트, 너트 등의 크기가 승인받은 Vendor Data와 달라서 케이블 트레이를 설치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이처럼 아람코 프로젝트는 구매 절차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므로 공사에 필요한 자재 및 장비 구매를 위해서 승인 서류를 최대한 빨리 제출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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