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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훈 Mar 20. 2020

후회하는 것과 후회하지 않는 것

후회는 발전을 위한 자양분

∙ 이 매거진은 IT 창업 풋내기의 창업 초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 이 매거진은 <흔한 문과생의 창업 도전 리뷰> 이후 이어지는 연재물입니다.



(창업 한지 2년 여가 지난)

내가 후회하는 것


1.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


난 어릴 적부터 게임만 좋아하고 책을 멀리 했다. 문제를 처음 느낀 건 고등학교 때. 문해력이 낮은 상태에서 입시 국어를 하려니 글자는 읽는데 머릿속에 의미가 들어오지 않았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언어 영역만 타 영역에 비해 2~3 등급이 낮았는데 난독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지다 보니 활자 공포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다 실패하기를 반복, 최근에 들어서야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 수준이 되었다.


이미 독서가 취미인 내 나이대 다른 사람들을 보면 사고 수준과 언어 수준에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글을  , 아이디어를 체계화할 때에도 지식의 결핍을 많이 느낀다. 내가 랜선 멘토로 삼고 있는 신영준님의 말처럼 아이디어는 '씨앗' 뿐이다. 그걸 사용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많은 지식과 실무 능력이 받쳐줘야 한다.


2. 외적 동기에 의해 했던 것들


나의 십 대 ~ 이십 대 초반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게' 결핍되어 있었다. 외적 동기에 의해 설정된 목표와 노력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다들 하길래 시작한 토익 공부'는 재미없고 지속적이지도 못해 의미 있는 산출물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홈페이지가 갖고 싶어) Wix로 웹사이트를 만들어본 경험은 UX 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충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조금 일찍 고민해봤다면 삶이 더 명쾌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3. 창업 관련 교내 활동을 하지 않은 것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 창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부전공으로 창업융합전공을 선택해 여러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창업 동아리를 통해 지원금과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3학년이 되어서야 경제가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졸업을 할 때까지의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검색해봤다면 3, 4학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역시, 기회는 찾는 자에게 주어진다.


4. 실무 경험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고 창업한 것


꿈이 있는 창업가도 어쨌든 매일 일을 해야 한다. 아이디어와 포부만 보고 돈을 주거나 제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내 능력으로 돈을 구해야 되고 내 능력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실무 능력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노트에 적은 아이디어는 수도 없이 많지만 막막함을 많이 느낀다.


'과연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를 원할까?'

'내가 그걸 검증할 수 있을까?'

'이 아이디어를 매력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이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을까?'

'이걸 함께 만들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지식과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사업 활동은 자기 계발일 뿐이다.


5. 백수가 되더라도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지 않은 것


나는 기획과 마케팅, 디자인, 회계 업무를 두루 할 줄 알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엔 조금씩 부족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돈이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유사시 가장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외주'다.


정부지원금, 투자금, 인큐베이팅 등의 보호막이 사라진 후에는 홀로 생존해야 하는 야생이 펼쳐진다. 이때 필요한 게 '표준화된 스킬'이다. 3주 동안 일해서 한 달 먹을 정도를 벌면 나머지 일주일은 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다음 단계의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왠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내 생존을 지켜줄 최후의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가? 아직은 자신이 없다.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것

    

1. 취미로 게임을 하는 것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찐 덕후님들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모바일과 PC 게임을 합쳐 하루 2~3시간씩은 하고 어떤 게임은 24명을 이끄는 동맹장 역할도 하고 있다. (회사 규모보다 훨씬 크네)  한때는 게임을 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차피 나란 놈은 하루 몇 시간을 놀아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약체구나.'라는 걸 깨닫고 마음의 짐을 버렸다.


최근에는 게임의 장점을 몇 가지 발견해 마음이 더 편해졌다.


1)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과 매일 소통하며 전략을 짜는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다. 소통 욕구와 성취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세세한 경험 하나하나가 기획을 위한 자산이 된다.


2) 공략 글 하나를 쓰는 데 꼬박 일주일을 투자하기도 했는데 무언가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다른 이를 위해 인사이트를 생산하는 활동도 좋은 기획 연습이 된다.


3)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UX의 끝판왕이다. 랭크 체계, 마일스톤 보상, 다른 사용자와 매칭 되는 방식 모두 앱 서비스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좋은 UX 레퍼런스다.


기획자에겐 노는 것도 공부가 될 수 있다.


2. 글을 쓰는 것


나는 나의 업을 소개할 때 '앱 만들고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브런치에는 창업과 관련된 가장 오피셜한 글을 쓰고 티스토리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다. 이보다 부끄러운 이야기는 손으로 일기장에 쓴다. 나는 내 글이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아도, 반응이 시원찮아도 괜찮다. 그만큼 내적 동기가 강하고 평생 하고 싶은 분야다.


글을 도구 삼아 나 자신을 정리하다 보면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save' 기능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 동안의 누적 상태가 저장되어 조금 더 수월하게 다음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내 글이 당장 돈을 벌어다주지는 않겠지만 언젠간 투자한 시간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거라 믿는다.


3.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하는 것


나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서 스트렝스 훈련(점진적 과부하의 원리로 힘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나머지 날에는 집에서 요가를 한다. 타고난 신체가 강하지 않은 데다 하루의 대부분을 좌식 생활을 하는 까닭에 계속해서 몸이 굳고 기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만성피로 갑) 그러다 작년부터 여러 서적과 주변 조언을 통해 운동법을 바꾸고 새롭게 요가도 시작했다. 자연스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식단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여러 방법론을 적용해보고 있다. (염증을 줄이고 장내 유익균과 뇌에 영양 공급이 잘 되도록)


그랬더니 웬걸? 그리 엄격하게 하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맑아지고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지난 3달 동안 퇴근하면서 피곤함을 느낀 게 손에 꼽일 정도고 술을 마셔도 숙취가 없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자존감과 긍정적인 마음도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이다.


4. 비교적 이른 나이에 창업을 한 것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창업한 것은 아쉽지만 창업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상태를 요약하자면 '돈은 없지만 삶은 명쾌하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매일매일의 생존은 걱정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가볍다.


'내가 만약 취업을 했다면?'을 주제로 가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그려지는 그림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하며 상사에게 대들다가 결국 잿가루가 되어 퇴사를 하는 것 뿐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길을 찾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저 열심히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현재 스타트업 GOODNERDS에서 앱 서비스 기획과 디지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GOODNERDS는 질문에 답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익명 SNS 우주챗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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