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윤 Jan 06. 2020

비단 '음원 사재기'뿐일 쏘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원 사재기’에 대해 다뤘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며 ‘비단 음원뿐일 쏘냐!’라는 생각에 피식 썩소를 지었다. 

어느 분야에서건 ‘사재기(폭리를 얻기 위해 물건을 몰아서 사들임)’는 마케팅 수단으로써의 오래된 관행이다. 인기로 먹고사는 가수라면 더더욱이나 내 노래가 여기저기서 많이 틀어지고, 차트 순위에 진입해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니 ‘사재기’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기가 어려웠을 거라 짐작한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남이 하는 건 나도 한다’는 국민성이 강해서 ‘베스트’에 유독 많은 관심을 두는 경향이 크기도 하고. 

    

출판 분야에서도 ‘음원 사재기’와 같은 현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이른바 ‘도서 사재기’다. ‘도서 사재기’는 엄연한 불법이며 적발될 시 벌금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공공연하게 ‘도서 사재기’는 어디선가 이뤄지고 있고, 나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해준다는 마케팅 업체의 홍보 메일을 받아 보고 있다. 


‘도서 사재기’를 일삼다가 적발되어 200~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나서 기존 출판사를 폐업한 후 새로운 이름으로 출판사를 내 또다시 ‘도서 사재기’에 집중하는 출판사도 있고, 작가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내용도 짜깁기 수준이지만 마케팅 업체에 수백만 원을 지불해 인터넷 서점 댓글을 조작하거나 도서 평점(별점)을 올리는 출판사도 있다.      


이 같은 일들을 단순히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봐야 할까?      


2019년 11월에 한 해 동안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들을 모시고 연말 북콘서트를 진행한 날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작가들에게 했던 이야기는 ‘그알’에서 가수 정준일의 소속사 대표가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했던 “제작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능해서 이 앨범을 사람들한테 알리지 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공정하게 판단이 되는 거면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일 텐데 그 부분이 어떻게 보면 억울하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즘 같은 때에는 오히려 ‘베셀 조작 마케팅을 하지 않는 내가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케팅 업체에 돈만 주면 작가님의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리는 것쯤은 일도 아닌데요. 작가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진지하게 ‘이런 거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무능해서 작가님들의 책을 널리 알리지 못한 것 같다는 죄스러움도 있고요.”     


경쟁이 공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미 ‘경쟁의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출판사 운영 초기에는 ‘판매와 순위’에 많은 관심을 두었지만, 이미 많은 출판사들이 ‘조작 경쟁’에 뛰어들어 ‘베스트셀러’의 가치가 크게 훼손된 것을 보고부터는 ‘우리 출판사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즐겁게 집중하며, 눈에 띄는 판매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좋은 작가와 좋은 글’을 모으는 데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자신의 이익보다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는 작가를 만나게 되고, 출판사 구성원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행복함을 느끼게 되고, 진심으로 우리 출판사의 작가를 알리고 싶은 마음을 종이에 꾹꾹 담은 손편지 마케팅을 하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우리 책이 없어서 슬픈 적 없었고, 출판사 구성원들의 노력이 절대 보잘것없지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서점 담당자들로부터 ‘꾸준히 하시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격려와 응원도 받고 있다.      


사재기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안 하는 것이다.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얻는다 한들 그게 얼마나 오래갈까. 조작은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은 결국 얼마 못 가 꺼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부당함은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의 과정이 아름다워야 훗날 결과에 도달했을 때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공정’을 부르짖고 있지만 ‘과연 우리 사회는 그만큼 공정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만큼은 ‘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 캐슬> 안 보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