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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윤 Jan 29. 2020

제발 책 (막) 쓰지 마세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제목을 달고서 이 글을 시작해본다. 하지만 진심으로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욕심을 가진 (예비) 작가라면 반드시 이 글에서 얻어갈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샌가 우후죽순 생겨난 책 쓰기 스쿨들의 “인생을 바꾼다”는 마케팅 덕분인지 많은 사람이 책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 위대한 도전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도전은 무엇이든 아름답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인생의 후회를 덜 남기며 사는 법이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출간할 생각이라면 책 내용에 대해서만큼은 여러 번(한두 번이 아니라) 검토하며 곱씹어볼 줄 아는 신중한 태도와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리고 싶다.      


지금까지 편집자로 일하며 읽어본 원고만 해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출간한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전에 비해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원고의 퀄리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예비 작가는 내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를 찾기 어렵고, 출판사는 책으로 낼 만한 원고가 없다고 느끼는 게 현실이다. 사실 투고를 받으며 화가 나는 순간이 한두 번도 아니며 ‘도대체 이런 원고를 어쩌라고 보낸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느낀 적 역시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을 쓴다는 건, 유명인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 세상에 목소릴 낼 수 있는 하나의 가치 있는 방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 게 맞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쓰는 동안 작가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런 이야기에는 당연히 읽는 독자도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 한 작가와 출간 작업을 하면서 나는 대대적으로 글을 수정해줄 것은 요청했다. 투고했던 원고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부정적이고, 건질 만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쓰고자 했던 큰 주제는 동일하지만 컨셉을 바꾸어 같은 얘길 해도 좀 더 밝고 발전적인 이야기로 수정, 보완하길 부탁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원고를 받았는데 분량이 800매에서 250매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쓸 얘기가 없고, 책으로 만들 수도 없는 분량이 나올 정도라면 도대체 왜 이 책을 내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주제 선정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경험, 내 생각보다 다른 책에서 베껴온 인용 부분을 거르고, 독자에게 아무 의미도 줄 수 없는 징징거림을 삭제했더니 남는 게 없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보통 책쓰기 수업을 통해 정해준 주제로 원고를 쓰는 작가들 중에는 별 고민 없이 선뜻 누군가 정해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 수업에선 절대 글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는 분량을 가장 쉽게 채우는 법을 가르칠 뿐이다. 나는 그런 작가들로부터 “사실… 제가 원래 쓰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남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지 말고, 휘둘리지 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들어간 게 없으면 당연히 나오는 게 없다는 걸 제발 인정하자. 한평생 살아오면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건 사기다. 평소 책도 안 읽고 사유도 없는 사람이 주옥같은 글을 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이래서 사람들이 책쓰기 스쿨에 가게 되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백만 권의 책들이 모두 공부거리인데도 말이다. 책을 읽고 나만의 사유를 하기 시작하면 내 생각이 생기고, 나만의 관점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내가 봐도 이 책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책장에 꽂혀있는, 자신의 지갑을 털어 산 책들을 한번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그 책들의 어떤 부분, 어떤 구절, 어떤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서 그 책을 샀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내 원고를 내가 읽었을 때 감흥이 오지 않으면 남들도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대충 썼지만, 남들은 돈 주고 사주겠지?’라는 생각은 잘난 척이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 정도도 고민하지 않는다면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 절대 책 쓰지 마라. 그리고 자기 책 한두 권 내보고 책 쓰기에 대해 다 경험한(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제발 스스로 공부하고 사유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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