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뻗어 들어 올리자 아이는 덥석 안겼고 준비해간 이동장 안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갔다.
언젠가는 이렇게 자기를 데려갈 사람이 나타날 줄 알았다는 듯이.
우리 아파트 뒷문 편의점 근처에 치즈냥이 한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을쯤부터 보이는가 싶더니 겨울이 되면서는 편의점 옆에 쳐놓은 천막에 들어가 아예 자리를 잡고 추위를 피했다.
덩치는 웬만한 성묘만 했지만 얼굴을 보면 아직 어린 냥이였다.
이 근처에 살던 같은 색 성묘가 아이의 아빠로 짐작되었는데 둘은 이제 길에서 마주쳐도 남 보듯 데면데면했다.
대신 아이는 사람들에게 살가웠다.
천막 안에 앉아서 컵라면이나 과자를 먹는 학생과 아이들에게 다가가 애교를 떨었고 그러면 학생들은 못 이기는 척 먹을 걸 나눠주었다. 간혹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을 일부러 사서 주는 사람도 있었다.
밥그릇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챙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밥그릇은 비지 않았는지 물그릇은 얼지 않았는지 자꾸 들여다보게 됐다. 그 길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사료 한 줌과 작은 패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나갔다.
겨울이 깊어가던 날, 편의점 앞 상자가 쌓인 곳에 종이로 만든 집과 그 안에 들어가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음료수를 사며 인사라도 건네려 했더니 편의점에서 돌보는 게 아니라 동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고양이 집을 편의점에서 모른 척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알바생이 대답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아이의 건강과 생활이 걱정됐다. 모른 척하려 해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이었던가 보다.
어느날은 아이의 몸에 핑크색 옷이 입혀져 있었다. 편의점 알바생에 따르면 동네 아줌마가 와서 입혀놓고 갔다고 했다. 그루밍을 즐기는 고양이로서는 그 옷이 달갑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겨울을 따스하게 나기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이 느껴져 마음이 흐뭇했다. 나도 뭔가 하고 싶어 남편을 꼬드겨 스치로폼 집 한 채를 선물했다.
치즈색 어린 고양이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돌봄을 받으며 편의점 앞에서 겨울을 보냈다.
하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 아이가 잘 있는지, 그새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는지 늘 마음이 쓰였고 그 마음은 어느새 가슴 한쪽을 무겁게 누르는 짐이 되었다.
친구의 친한 친구가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게를 하는데 자꾸만 쥐가 생겨 가게 안에 풀어놓고 키울 생각이라며 아는 사람에게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영역에 매우 예민해서 아무 데나 데려다놓는다고 잘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낯선 가게에 데려다놓으면 놀라서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 아이라면 잘 적응할 것 같았다.
길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유난히 사람 손을 타는 녀석들이 있다. 나를 데려가주면 정말 착하고 예쁜 짓만 하는 고양이가 될게요, 다짐하듯 말을 거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듯 늘 순하고 말랑말랑했다.
하루 저녁 시간을 내서 친구와 함께 편의점을 찾았다. 고양이는 추운지 편의점 안 한쪽에서 눈치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알바생에게 물어보니 내보내도 잠깐 나갔다 저렇게 다시 들어온다고 했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 안면을 익힌 알바생에게 고양이를 데려가도 좋은지, 정말 따로 돌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데려가도 좋다고, 여러 사람이 돌보지만 따로 돌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체온이 따스했다. 아이는 피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올 이런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동장에 넣어도 반항 한번 하지 않았다. 캣맘 생활 하면서 많은 고양이를 봤지만 참 신기한 녀석이었다.
친구가 데려간 고양이는 다음 날 차를 타고 앞으로 살게 될 가게로 이동했다. 친구가 보내온 사진 속엔 차 뒷자리에 올라서서 평화롭게 세상 구경을 하는 녀석, 편안히 누워 드라이브를 즐기는 녀석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집이 될 가게에 도착해 낯도 가리지 않고 식사를 하는 모습도 전해 왔다.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떠나지 않던 2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로, 치즈냥이는 어엿한 가족이 되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참, 쥐는 잘 잡는지 근황을 물으니, 고양이의 용변 냄새에 놀랐는지 얘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쥐들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