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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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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Apr 14. 2019

목줄 벗고 고양이답게 사뿐히

봄이 시작될 무렵, 가끔 안부를 전하고 사는 108동 캣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는 분이 고양이를 집에서 묶어 키우고 있는데 4월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밖에다 내놓을 예정이라니 이를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묶여 지낸다는 그 고양이 얘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방법이야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고양이를 묶어서 키우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싶어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4~5개월경 실내에 들어와 4개월쯤 됐다니 이제 8~9개월령.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창 우다다를 하며 깨방정을 떨 시기의 어린 고양이가 본능 한번 제대로 발산하지 못한 채 목줄에 묶여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보내준  사진 속의 고양이는 표정부터가 울적했다.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이나 애교는 찾아볼 수 없고, 어딘가 체념의 분위기만이 아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이렇게 길을 들여놓고 이제 와서 다시 밖에다 내놓겠다니 보호자에게 말할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2~3년을 버티기 힘든 것이 길생활인데 어린 시절을 실내에서 보낸 고양이가 다시 밖으로 나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걸까?


평소 의지하던 미오 언니(다른 캣맘)에게 한바탕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미오 언니는 흥분한 나를 진정시키며 인터넷에 입양 글을 올려보자고 제안했다. 묘연이 있다면 분명 좋은 입양자를 만날  거라며.


다행히 목줄에 묶여 지내는 고양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많은 분들이 입양 신청을 해주셨고, 예비 집사 인터뷰의 달인인 미오 언니가 고양이를 대신하여 신청자 중 가장 믿음이 가는 한 분을 집사로 간택했다. 고양이 보호자를 설득하는 일은 내게 소식을 전해준 108동 캣맘이 맡고, 간택된 예비 집사님은 알레르기 검사까지 마치고 만남을 준비했다.


드디어 3월의 어느 토요일, 4개월 만에 목줄을 벗은 고양이가 케이지에 들어갔다. 집사님을 만나러 떠나기 전, 기본 접종을 하러 단골 병원에 갔다. 주사를 맞히기 위해 조심스레 아이의 목을 잡는데 목줄을 했던 부분이 밭이랑처럼 푹 파이고 주변의 털은 물엿을 발라놓은 듯 뻣뻣했다. 그 순간에야 우리가 이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양이를 보호하던 분도 분명 고양이를 괴롭힐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추운 겨울이라도 실내에서 지내라고 안으로 들일 만큼 고양이를 사랑한 분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과연 이 아이를 행복하게 했을지, 오히려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좋은 곳으로 가는 걸 알았던지 일산에서 천안까지 먼길을 가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우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얌전히 참아냈다. 그리고 케이지가 열리자마자 준비된 숨숨집으로 재빨리 들어가 몸을 파묻었다. 목줄을 하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새 삶을 시작한 고양이에게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행복한 소식이 전해진다. 이 입양에 힘을 보탠 세 명의 캣맘은 그 소식을 접할 때마다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힘들지만 캣맘으로 살길 정말 잘했다고 서로에게 감격 어린 인사를 건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쁜 이름 얻은 이프야, 새로운 집사님과 함께 도도하고 애교 넘치는 고양이로 행복하게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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