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현관 앞까지 따라온 탄이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보고 다시 나오라는 건지, 자기를 데리고 들어가라는 건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탄이는 올해 6월에 TNR 통덫에서 처음 대면한 아이다. 3월 첫날이 되자마자 남보다 빨리 TNR을 신청한다고 했는데도 올해는 6월이 되어서야 우리 아파트 차례가 왔다. 관리소 뒤편 밥자리에 하나, 103동 풀숲에 하나, 104동 주차장 뒤에 하나 해서 3개의 통덫을 놓으며 마음속으로는 코점이, 빠리네 엄마, 운 좋으며 약아빠진 깜순이까지 요렇게 세 녀석이 들어가 주기를 바랐다.
* TNR: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길고양이 중성화. 포획(Trap)한 뒤 중성화 수술(Neuter)하여 포획한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TNR한 길고양이들은 한쪽 귀 끝이 잘려 있다.
그러나 새벽에 나가 둘러본 통덫에는 처음 보는 어린 고양이 둘만 겁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탄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던 듯, 두 아이는 방사된 뒤에도 밥자리 주변에 머물며 잘 적응하는 눈치였다.
원래 중성화를 시키고 싶었던 녀석들을 놓친 건 아쉬웠지만 이 아이들이라도 평화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TNR 통덫에 갇혀 있던 어린 길냥이들(까만 아이가 탄이)
그리고 7월초.저녁 밥배달을 돌다가 2~3층 높이의 아파트 현관 지붕에서 울고 있는 탄이를 다시 만났다. 아마도 새에게 홀려 나무를 탔을 탄이는 아래를 지나가던 나에게 있는 힘을 다해 SOS를 보냈다.
- 저 아이 어젯밤부터 저기 있었어요.
경비실에서 빌려온 사다리를 가져다 대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아이를 유혹하고 있자니 지나가던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중 한 사람이 알려주었다.어제는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주고 들어갔는데 그렇다면 하루 넘게 저 위에 있었단 건가? 올라갈 때 탔던 나무를 타고 내려오면 될 것 같은데 탄이는 지붕에서 나무로 뛰어내릴 용기가 안 나는지 더더욱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마음이 급해진 내가 실내로 들어가 2층 창문을 열고 닭가슴살을 한 점 한 점 뿌리 탄이를 불렀다.
-어이, 고양이, 이거 먹으면서 밖으로 나가자. 저기서 친구들이 기다려.
닭가슴살의 고소함 때문인지, 그동안 사료를 갖다 바친 정성 덕분인지, 지하 1층까지 내려가 길을 잃을 뻔했던 탄이는 한 시간여 만에 현관을 벗어나 자기 살던 바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탄이의 스토킹이 시작된 건 그다음 날부터였다.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내가 다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밥자리에 출석했다. 그러나 사료와 물은 먹는 시늉만 하고, 자기가 나를 찜했다는 듯 옆자리를 지키며 당당히 따라다녔다. 총총거리며 따라다니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사람들 눈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군가 고양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민원이라도 넣으면 안 그래도 조심스러운 밥배달 활동에 지장이 올 수도 있고 아이들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밥배달이 끝나면 탄이는 현관 앞까지 따라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떤 날은 떼쓰는 아이처럼 울기도 했다.
나도 데려가라, 너와 같이 살고 싶다, 이런 뜻인가? 이런 걸 간택이라 하는 건가?
꽤 많은 길고양이들을 접하고 구조도 해봤지만 현관 앞까지 따라와 우는 아이는 처음이라 이 상황이 난감하기만 했다.
쟤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또 길을 잃으면 어쩌지? 데려와서 입양을 보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나를 데려가라. 차라리 나를 밟고 지나가라.
우리 집엔 이미 다섯이나 되는 고양이가 있고, 길에서 살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니 외면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데 어디 가서 살아도 길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되기도했다.
좋은 집사만 만나면 아이의 묘생이 얼마나 달라질지 알기에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구조하고 싶은 마음 반,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 반.
며칠을 고민한 끝에 어느토요일 아침에 케이지를 들고 나갔다. 심하게 반항하면 그대로 두자 마음을 먹고 구조가 가능한지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밥배달을 마치고 내 옆에서 쉬고 있는 탄이에게 다가가 슬며시들어 올리니탄이는 기다렸단 듯 몸을 맡겼다.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케이지에도 순순히 들어갔다.
탄이야,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리고 탄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에서 기본 진찰을 마치고 임시보호처에 옮겨진 지 일주일 만에 새 가족을 만났다.
물론 모든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가는 길에 겁을 먹었는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케이지와 온몸이 똥으로 범벅돼 있기도 했고, 하루 세 번씩 입양글을 올려도 예쁘다는 인사글뿐 정작 문의는 없어 낙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묘연은 따로 있는지, 탄이를 보고 한눈에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예비집사님은 까탈스러운 입양조건에도 전혀 싫은 기색 없이 입양신청서를 정성 들여 작성해주었다. 그 속에는 몇 년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으나 이제야 주거가 안정되어 가족을 맞기로결심한 사연, 고양이의 수명과 생태에 대한 이해가 감동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입양날, 집사님은 새 가족을 위해 준비한 공간과 설렘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탄이를 맞아주었다.예상했던 대로 탄이는 특유의 천진한 애교로 빠르게 적응해 나갔고 이미 집사님과 찰떡호흡을 자랑하며 적응을 완료한 상황이다.
지금은 꿍이라는 이름으로 외동 고양이의 럭셔리한 일상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전해져 오니 그동안 고민하고 갈등했던 일이 꿈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