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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Apr 04. 2022

강아지와의 낯가림

이런 내가 나도  싫지만,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친한 친구에게 징징대고 송년회에 가서도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입양을 위한 아주 구체적인 것들을 알아보진 않았다. 모두의 응원을 받고도 그랬다. 책임감겁이 많고, 모든 것에 기준이 높고, 통제욕과 인정욕이 동시에 있는 사람이라서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혜향이가 입양 문의가 없대요. 둘째 들이고 싶어서 탠져린즈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서 볼래요?” 실제 모습을 보고 나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이 좀 정리될 거라며 친구가 살며시 등을 밀었다. 사실 탠져린즈의 서울 팬미팅 소식을 접하고 포스터도 다운 받아두었지만, 혼자 갈 엄두는 안 나고 친구한테는 같이 가자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다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때가 있다. 나는 내 감정을 잘 숨긴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쉽게 들키는 사람이다. 예전엔 어쩜 그리 찰떡 같이 믿었을까.

오후의 삼청동에서 혜향이와 영귤이를 만났다. 카페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친구의 강아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던 영귤이와 달리, 그날의 혜향이는 어쩐지 저기압이었다. 컨디션 난조로 움직임이 둔했다. 강아지를 가까이 한 경험이 적어서 실제로 만나면 조금 어는 편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나에게 귤엔터 대표님이 혜향이를 넘겼다.


친구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어버버한 사이에 안긴 혜향이를 어찌할지 몰라서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1시간이 넘도록 몸을 말고 무릎에 누워있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미동도 없이 잠이 든 것 같은데, 편한 걸까? 강아지라는 존재는 모두가 이렇게 낯선 이에게 툭하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걸까?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무릎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아직은 쌀쌀한 1월의 어느 날을 데우고 있었다. 평화롭다, 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좀처럼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누군가가 기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나에게는 잘 찾아오지 않는 물음과 감정이었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험이 없다 보니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몰라서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 했고, 1시간이 넘도록 혜향이가 무릎에 앉아있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전날 우연히 본 별자리 운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무언가가 있고 그걸 취하면 잘할 건데도 선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민이 있으면 이런저런 말에 다 휘둘리는 법이다.


아마도 적당한 거리에서 혜향이를 그저 바라보고만 왔다면 오늘의 결과는 없었을 거다. 나는 강아지와도 낯을 가리는 사람이다. 직접 본 혜향이는 생각보다 컸고, 한눈에 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어둔 선 안으로 훌쩍 들어와 버렸다. 방어기제로 높다랗게 쌓아 올린 벽을 감싸는 온기만큼은 여전히 기억한다. 컨디션 난조가 만들어낸 어떤 순간이 말한다. 세상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필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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