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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초랑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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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Apr 14. 2022

조련의 기술

산초와 가족이 되기까지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자니, 내가 세상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좋으면서도 아닌 척하는 편이고(뭐래), 원하는  있어도 말을 아끼는 편이며(진짜 뭐라니), 속내를 말하지 않고도 알아주길 바란다.(가관..) 이런 주제에 걱정은 얼마나  많은지. 약간 나조차도 징글징글한 느낌인데, 놀랍게도 혜향이는  애매모호한 인간과도  맞았다. 적당한 거리감을 두되, 내 마음이 어쩐지 몽글몽글해질 때면 마치  마음을 안다는 듯이  들어와 버렸다.


귤엔터 대표님들은 말했다. “이렇게 천재 강아지일 수가 없어요.” 천재 강아지라는 게 대체 뭐지? 보호자와의 깊은 아이컨택, 발맞춘 산책, 무던한 성격 같은 것들을 얘기해줬는데, 비교군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두 물음표 투성이었다. 잘 짖지 않는 무던함 정도가 이해되는 수준이랄까. 이렇게 강아지에 대해 하나도 모를 수가 있나, 라는 생각에 또 머리가 하얘지고 만다. 그때 귤엔터에서 제안을 했다. “괜찮으시면 원래 컨디션의 혜향이랑 한 번 더 뵙고 산책을 해보시면 어때요.” (지금 생각해보니 귤엔터 대표님들 너무 치밀하신 것. ㅎㅎ)


성미산에서의 첫 산책이라고요?(귤엔터 제공)

네?? 강아지랑 산책이라고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줄을 한 손으로 잡아요 두 손으로 잡아요? 줄을 세게 당기면 아픈 거 아닌가요? 강아지가 튀어나가면 어떻게 해요? 줄을 놓치면요? 경험이 없으면 최악을 생각하는 성향의 인간답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에게 닥칠 상황은 물론 산책으로 만날 모든 생명이 낯설었지만, 일단 저질러 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귤엔터 대표님들이 빠르게 대처해주시겠지. 뭐든 해봐야 다음도 있는 거니까. 일단 믿고 가자.


합정 망원에서 거의 15년을 살고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성미산을 혜향이와 함께 걸었다. 처음 잡는 리드 줄이 어색하고, 혜향이가 가는 길을 내가 방해할까 봐 이상한 자세로 걸었다. 위험한 게 튀어나올까 봐 긴장한 탓에 겨울인데도 땀이 잔뜩 났다. 운동화 끈은 죄다 풀렸는데도 어떻게 멈추는지를 몰라서 질질 끌고 다녔다. 정말 쉽지 않다, 고 생각했는데 산책은 시작한 지 20분도 되지 않았다.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린 건 “혜향”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발견하고부터다. 아이돌 연습생의 조련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솔 톤으로 이름을 불러보세요”라는 명령어를 어정쩡하게 수행한 목소리를 찰떡 같이 알아듣고 함께 걷는 낯선 존재를 땡그란 눈으로 깊게 바라봤다. 간식을 받아먹고 도도도 걷다가도 종종 뒤를 돌아 나를 봤다. 계단을 내려가다 멈춰 서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나를 기다렸다.


절정은 사진을 찍을 때 벌어지고야 말았다. “카메라 렌즈 위로 간식을 들고 찍으면 잘 찍혀요.”라는 명령어를 또 엉거주춤 수행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자마자 혜향이는 조그마한 몸을 낮춰 앉더니 아련한 눈으로 나를 또 바라봤다. 강아지의 특성이나 여러 방법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기라 이제는 이해하지만, 당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모든 게 기적처럼 느껴져 버렸다. 이게 바로 천재 강아지라는 것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앉았어~”라는 대사를 내가 뱉게 될 줄은 몰랐다.


짧은 산책을 마친 후,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떤 충만함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양 결정을 유보하며 강아지를 만나는 게 자꾸만 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텐데, 역시 나는 나만 생각하느라 심각해진다. 한없이 마음을 빼앗기고도 의심과 자기 불신에 잠식당하는 인간이 보호자여도 되는 걸까.


수시로 널뛰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워 당시 거의 맹신하듯 읽던 <가벼운 책임> 찾았다. 결정이 어려울 때는 이름을 지어 부르면 두루뭉술한 것들이 실체가 되어 가까워진다 했다. 물건에도 자연스레 이름을 짓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무엇에도 나만의 이름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존재를 위한 이름은 더더욱 없다. 좋아하는 과일이나 모색으로부터 떠오르는 단어가 이름이 되기도 하던데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연만큼은 쉽게 떠올랐고, 모험을 지지해주기를 바람을 담아 조심스럽게 ‘산초라고 지어보았다. (이름 얘기는 나중에  ㅎㅎ) 하다못해 <동물농장>   없는 사람이 이름을 짓기에 이르렀다. 조련은 그렇게 한 사람을 물들이고야 말았다. 이것은 조기교육의 힘인가, 본 투 비 아이돌의 본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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