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초랑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경진 Apr 29. 2023

기대는 삶

작년 겨울, 산초 입양을 한참 고민할 때 들었던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도와달라고 해”였다. 지독하게 걱정이 많은 나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엔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던진 친구의 말이었다. 도와달라니. 내 사전에서 절대로 꺼내고 싶지 않은, 그리하여 진짜로 꺼낸 경험이 극히 드문 말.


가능하면 스스로 해내고 싶다. 불가능해도 나의 약한 면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데 나는 내 짐을 누군가에게 더하는 것만 같아 하기 싫었다. ‘완전무결’이 비현실의 단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삶을 꿈꿨다. 나도 기대지 않고 남도 나에게 기대지 않는 삶. 하지만 산초는 만나자마자 그게 뭔 소리냐며 그 벽을 허물어버렸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허벅지를 지지대 삼나 온몸의 무게를 실어 퍽하고 기대버리고, 뻗은 다리와 발을 베개 삼아 누워버린다. 산초와 산 덕분에 나는 대견사회성도 대인사회성도 (약간) 좋아졌다.

다양하게 기대는 애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도움을 받으면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사람이다. 어떤 자리에 산초를 초대해 주는 마음에도, 기꺼이 차의 한 곳을 비어주는 마음에도, 직접 간식을 구워 나눠주는 마음에도. 그것이 모두 함께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이런 전전긍긍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어쩌면 ‘난 해줄 수 없어요’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받을 줄도 알아야 줄 수도 있는 건데, 둘을 하려고 하지 않으니 섬처럼 살아갈 밖에… 산초는 그 섬을 이으러 온 존재다. (역시 누가 돈키호테고 누가 산초인지를 모르겠네.) 나는 산초 덕분에 기대는 삶의 온기와 기브 앤 테이크로 정리되지 않는 마음의 순환을 경험하는 중이다. 기꺼이 하는 마음에 깃든 애정도.

언제나 산초를 사랑해주는 하디네

4월에는 2019년 이후로 가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오래도록 혼자 하는 해외여행이 인생의 유일한 사치이자 숨 쉴 구멍이었던 사람은 ‘산초와의 제주도 여행‘과 ’혼자하는 치앙마이 여행‘ 중 후자를 택해버렸다. 내가 살아야겠어서였는데, 사실 열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온전히 다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수주와 창석이네 식구들이 산초를 케어해 준 덕분이었다. 우연히 소식을 듣고 별 일 아니라는

듯(아니겠지만) ”우리 집에 보내요“라고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뭐긴 뭐겠어 그냥 사랑이지. #튜탕캠프에서 보이는 산초의 표정만 봐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사랑인데 뭘 의심해.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랑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예측불가한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마음이 나에게는 너무 커서다. 500여 일 간을 함께해 준 존재들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그 순간이 즐겁고 좋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서로의 생명을 바라봐주고 궁금해하고 예뻐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기댈 품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한다. 나는 왜 이다지도 무겁고 내 품은 왜 이렇게나 좁은가. ㅋㅋㅋ 고질병은 바로잡기

어려워서 고질병이다.. (한숨)

매거진의 이전글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뉘앙스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