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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밤 Jan 30. 2024

책임감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5살 아들에게 보내는 손편지

가장 짧은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게 된 존재, 서진아.





어젯밤도, 오늘 아침도 우리는 다투었지. 같이 누우면 이제는 좁은 너의 침대에서 사랑을 속삭이다가도 원수진 것처럼 서로를 할퀴고 용서를 구하고 외면하는 밤들을 보내고, 부은 얼굴로 기분 좋게 아침을 나눠먹다가 마음에 드는 바지가 없다며 자리에 주저앉은 너를 두고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는 내 뒤를 울며 따라와 엘리베이터에서 신발을 신는다. 물론, 퉁퉁 부은 눈으로 버스에 타서도 너는 손하트를 쏟아내고, 나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너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사이지만. 그래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롤러코스터 타듯 보낼 수밖에 없는 걸까.



“엄마, 한 번만 용서해 줘, 제발.”하고 울먹이는 너의 말을 들으면 “서진아, 그런 말을 할 만큼 잘못한 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 대신 너의 ‘한 번만’을 몇 번 속아 넘어가 주다가 결국 “네가 약속을 어겼잖아. 엄마를 사랑한다면서, 너는 왜 엄마와 약속을 어기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깜깜한 침실에서 잠긴 문 사이로 “엄마랑 자고 싶어!”하고 울부짖는 너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오면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때론 그냥 약속이고 규칙이고 뭐고 상관없이 너를 안고 잠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지. 아니면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



그럴 때면 스스로를 다독여. 너는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관계’를 배우며 다른 관계들을 맞이할 준비, 그래서 사회적 인간으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고. 이런 눈물범벅의 밤들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라고. 언젠간 네가 나를 향해 방문을 걸어 잠그며 “엄마,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마. 이건 규칙이야.”라고 할 거라고.



아빠가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먹고, 놀러 가고 싶을 때 놀러 가고 싶다. 의식의 흐름대로 살고 싶다.”고 했어. (힘들고 지친 아빠를 달래는 방법은 아빠가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는 거야.) 마침 영화 채널에서 <다크 나이트>가 막 시작했더라. 말없이 같이 보다가 엄마가 말했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우리 몸이 참 무겁다.”



네가 태어나고부터는 너라는 무게 추가 가족의 중심에 있어서 엇나가고 싶어도, 날아가고 싶어도, 도망가고 싶어도 중력처럼 우리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머물게 해. 이걸 ‘책임’이라고 하지. 솔직히 말해서 내 몸뚱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괴로울 때가 많아. 너도 네 맘대로 안되면 화나듯이 말이야. 그렇다고 마냥 괴롭지만은 않고.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사랑’에서 오는 거니까.





때때로 네가 주는 사랑과 위로와 격려는 생애 처음 겪어보는 것이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해. 집에 있는 비누꽃다발을 거의 매일 나에게 갖다 주며 네가 그렇잖아. “엄마, 나와 결혼해 줘! 꽃 냄새 맡아봐, 향기롭지?” 내가 “아빠랑 벌써 결혼했는데?”라고 답하면 “그럼 셋이 결혼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너. 내가 재채기를 하면 “엄마! 물 마셔!”하며 어디선가 물을 가져와 내 입 앞에 갖다 대지. 아프다고 하면, “엄마, 약 먹고, 물 많이 마시고, 좀 누워 있어!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하고 누워 있는 내 곁에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갖다 놓는다. “엄마, 심심하면 이거 읽어!”



엄마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갖다 주는 마음이 네 진짜 마음이라는 걸 알아.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 아침마다 옷 투정하는 것도 알아. 잘 때도 엄마랑 오래 놀고 싶은데 피곤해서 짜증 내는 거 알아. 엄마도 너에게 화내고 싶었던 적, 상처 주려고 화낸 적 단 한 번도 없어. 네가 나로 인해 상처받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거든.



서진아, 엄마가 너를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너를 사랑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나도 받아야 들여야 하지. 그래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 괴롭기도 해. 그럼에도 너를 사랑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할지도 몰라. 그런 사랑이 내 인생에 또 찾아올까? 아니. 엄마는 너뿐이야. 우리, 지지고 볶더라도, 같이 더 오래 행복하자. 여자친구 생기면 쿨하게 보내줄게, 아니 그러려고 지금부터 노력할게. 이것도 사랑, 맞지?



2023.08.10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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