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쓴 육아일기는 아이의 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쾌활하고, 적극적이고, 고집쟁이고, 귀엽고, 착하고, 예쁘다
― <빅토리 노트>, 이옥선·김하나 지음
잠이 올 듯 말 듯, 하지만 자기는 아쉬울 때 술술 읽어내린 책이 있다.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작가가 40년 전에 집필한 육아일기가 출간된 책, 제목은 <빅토리 노트>. 꽤 두껍지만 일기가 그대로 스캔된 페이지와 다시 타이핑하여 가독성 좋게 되어있는 페이지가 반복되기 때문에 금방 읽게 된다. 이렇게 빨리 읽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위트와 말 맛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판 남인 이들에게도 잘 읽히는 것은, 작가님이 담백하게 있는 사실에 보탬이 없이 쓰셨기 때문일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육아일기를 보는데 내가 사랑받고 채워지는 기분이 들까? 나도 비슷한 유년시절을 비슷한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긴 성장과정 동안 얼마나 많은 보살핌과 자비 안에서 조금씩, 하지만 쑥쑥 커가는지 새삼 상기하게 된다. 매일매일의 영양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이만큼 크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나는 고향엘 다녀왔는데, 내가 기억하는 트라우마적인 큰 사건 외에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었는지 내 멋대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부끄러워졌다.
<빅토리 노트>를 읽지 않더라도, 읽었다면 꼭 들어야 할 팟캐스트가 있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이 진행하는 <여둘톡>이라는 팟캐스트에 이옥선 작가님이 출연하여 <빅토리 노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에피소드가 있다. 난 이 팟캐스트를 먼저 듣고, 꼭 책이 읽고 싶어져서 읽게 되었다. 팟캐스트에서 이옥선 작가는 '육아일기를 쓰든 쓰지 않든,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는 말을 남기셨다. 황선우 작가는 '어떻게 아이가 온갖 패악을 부린 후에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고 늘 끝을 맺냐'고 물으셨다. 이옥선 작가님은 그게 아이가 무슨 짓을 벌이던 사랑스럽게 보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김하나 작가님은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생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사람이 자라면 아이 때 어른들의 인내심을 무수히 많이 시험하면서도 사랑받던 것과 귀한 추억들을 모두 까먹는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더라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났을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더 유연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육아일기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난 비슷한 이유로 일기를 다시 쓰고 싶어졌는데, 말하자면 서른 가까운 나를 키우고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기이고, 언젠가는 나도 내가 버텼고 즐거워했던 이 시간들을 모조리 잊고 말테니까. 나는 아주 선별적으로만 기억할테고, 잊혀진 기억 중에는 내가 기억했더라면 더 단단해지고 깊게 뿌리내릴 만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을 책이지만 나는 특히 성년이 된 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임신했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더더욱. 어머니와의 관계나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모두 쉽지 않은 거라서, 이 모든 걸 다시 돌아볼 수 있게도 만들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톡톡한 재미를 주는 귀하고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런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