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내가 무엇을 신뢰하기로 선택했느냐에 기인하고 있다. 꽤 단순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사랑이다.
괴로움보다는 사랑, 언제나.
― <빅 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이하 같은 책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바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빅 매직>. 부제가 이 책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이렇다. 두려움을 넘어 창조적으로 사는 법. 사람들은 저마다 갖가지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이중 가장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두려움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나도 바로 그런 케이스였던 것 같다. 솔직하자면 이 책이 나를 어떻게 불붙일 줄 알고 있었기에 피해온 것도 있었다.
나는 <빅 매직>을 수차례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앞부분을 여러번 읽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마흔 살의 나이에 다시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는 친구 수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그냥 그렇게 했다. 일주일에 세 번,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낮 시간 내내 고달픈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바로 그 숨 가쁜 시간에 스케이트를 탔다.' 왜냐하면, '어른이 된 그녀가 자기만의 기쁨을 향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힘―우리 모두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권리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열정을 효율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고, 아무 의미 없다는 거짓말을 해대며 무시한다면 우리는 점차 속에서부터 죽어갈 것이다.
<빅 매직>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 삶 속에서 예술―글쓰기와 피아노―을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활동, 나를 소비자로만 머무르지 않게 해주는 활동을 지속하기만 하면 되고, 그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겠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써봤자 아무도 읽어주지 않고, 어쩌면 평생 헛수고만 하다가 끝나면 어떡하지,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일에, 게다가 결과가 있더라도 신통치 못하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것도 던져버렸다. 왜냐하면 저자의 말마따나, 두려움은 지겹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삶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를 질식시킨다. 난 그런 삶과 이제는 작별하고 싶다. 두려움과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항상 나와 동행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의 목소리에 따를 것이다.
사실 호기심은 오직 단 한 개의 질문만 던진다. "네가 재미를 느끼는 게 뭐라도 있니?"
그 무엇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 얼마나 일상적이거나 시시한 것이라도 상관없이?
나는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바치고 싶다. 소설가, 시인, 피아노 연주자, 화가, 그 어떤 종류의 예술이라도 좋다. 우리는 매일을 우리의 방식대로 창조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우리 모두는 타고난 창조자들이다. 다만 한국어에서 '창조성'이란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고, 정말 희한한 괴짜들만 입에 올리는 용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내가 괴짜일 수는 있지만… 더 좋은 단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이렇게 힘주어 창조성을 찬양한다고 그 무게나 열정의 중요성, 엄숙함, 진지함 따위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충분히 가벼워질 것을 권고한다. 열정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우리는 아주 가벼운 태도로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호기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내 영혼의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가 오직 내 자아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영혼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이 보상이나 실패에 대해 한 톨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 영혼은 달콤한 꿈결처럼 칭찬의 말이나 혹은 비평을 받게 될 두려움을 방편 삼아 이리저리 인도되지 않는다. (생략) 영혼을 돌볼 때면, 나는 그것이 내 자아가 평생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광활하고 매혹적인 안내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경이로움뿐이기 때문이다.
<빅 매직>은 나의 두려움―온 시간을 투자해놓고 전혀 쓸모없는 결과만 손에 남게 될까봐, 혹은 남들이 보기에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어내서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될까봐―을 단번에 종식시켜주었다. 나는 이제 완벽과 거리가 먼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사람들 앞에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게 나의 최선이기만 한다면. 세상에 어차피 완벽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가 언젠가 가장 이상적인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때도, 그럴 만한 조건에 들어맞게 되는 때도 영영 없을 거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오직 지금뿐이고, 난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련다. 나는 앞으로 계속 쓸 것이다. 형편없어도, 부끄럽고 두려워도. 잘 풀리지 않아도, 어느 때라도, 그 무엇이라도.
혹은 어쩌면 그 어디로도 당신을 이끌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일평생을 들여 호기심을 좇았으면서도, 마지막에는 그에 대해 내세울 만한 무엇인가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당신은 자신의 필멸하는 존재 전체를, 우리 인간의 고귀한 천성인 집요한 탐구심의 추구에 바쳤음을 인지하면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풍요롭고 찬란한 삶을 살았다고 할 만하다.
― <빅 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