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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Dec 13. 2020

그냥 버티는 거죠 뭐

오늘 친한 동생이 훈련소에 들어갔다. 머리를 바짝 깎은 모습을 보니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머리를 밀었기 때문일까? 입대하던 그날의 겨울은 유독 추웠다. 동생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군대 생활을 하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아쉽게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일상이 너무 고되기 때문일까. 너무 괴로운 기억이기 때문일까. 군대가 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그렇게 끈끈하던 전우들도,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학생일 때는 공부를 해야 하며, 성인이 되면 취직을 해야 한다. 친구와 싸우기도 하며, 듣기 싫은 직장 상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죽고 싶을 정도로 외로움에 시달린다. 누구에게든 제일 힘들었던 시절은 존재한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흐릿해진다. 어서 벗어나고 싶던 군대도, 정작 벗어나 보니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결국 군대가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군대에서 일주일에 세 권 정도는 책을 읽었다. 일과가 끝나면 운동도 했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겪었으며, 인간은 걸으면서 잘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군대 이야기로 글을 쓰고 있으니, 여전히 군대의 덕을 보고 있다. 군대는 분명 인생에서 극복해야 하는 시련이었으나, 지금은 기억마저도 흐릿하다. 내게 남아 있는 건 군대에서 쌓은 추억뿐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당장 물에 빠진 사람에게 ‘살아 돌아가면 재미있는 추억일 뿐이야’라고 말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순 없다. 하지도 못하는 수영을 하려고 했다간, 괜히 귀한 체력만 낭비하게 된다. 악착같이 버티는 수밖에 없다. 가만히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잘 살펴야 한다. 육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에너지를 낭비했다간, 지쳐서 가라앉고 말 뿐이다.

경쟁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본능일까. 우리는 무엇이든 이기려고 한다.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고통마저 이겨야 할 대상이 된다. 힘이 나지 않지만 억지로 힘을 내고, 마음은 공허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유지한다. 무엇이든 이겨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는 힘을 내다보니, ‘번 아웃’은 현대인의 대표 질병이 되었다.

나는 지금 군대라는 시련을 이겨냈다. 그 시절을 통해 배운 점도 있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분명 이겨낸 고난의 시절들이 있다. 그때 그대는 무엇을 하였는가? 힘든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내일 전역을 하진 않는다. 억지로 미소 짓는다고 해서 힘든 일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슬픔은 언젠가 지나간다. 그것은 2년일 수도 있고, 10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지나간다. 우리는 그저 버티기만 할 뿐이다.

일부러 고난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힘든 일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움직이는 건 항상 괴로움이다. 그 녀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는, 어느 순간 떠난다. 평생 나를 따라 다니던 고통도 분명 사라지는 때가 온다. 우리는 그저 버틸 뿐이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더 빠져들고 만다. 고난은 언제나 다른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서 위기를 극복하는 교과서도 없다. 만약 그대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고통 가운데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나처럼 그 긴 시간을 버티기만 하면 된다.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도, 언제나 그렇듯 스쳐 지나가 흐릿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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