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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Mar 23. 2022

01. 나의 우울증 이야기

열심히 산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

Q : 언제 처음 우울증 증상이 발현되었는지

A : 무엇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맡은 일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 했다. 이왕하는 일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어차피 한다면 잘하는 게 훨씬 기분이 좋지 않은가. 열심히 사는 성격은 가정환경과 맞물려 나를 더욱 몰아 붙였다. 아버지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셨다. 고작 서른인 어머니에게 과부란 짐은 분명 무거웠을 테다.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가세는 점점 기울어만 갔다. 언제나 방 한 칸되는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여름에는 선풍기로 더위를 피했고, 겨울에는 주전자에 물을 데워 머리를 감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열심히만 살면 그만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알바를 쉬지 못 했다. 방학 동안 일을 해야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알바야 하면 그만이었다. 어머니의 조현병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별 일 아니었다. 불효자란 소리를 들을지언정 강제입원 수속을 밟았다.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돈이 필요해서 일을 쉬지 않았고, 돈이 부족해서 일을 늘렸다. 어머니를 책임져야 했기에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멈춰 있을 곳이 없었다.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달렸는데, 여전히 정처없이 떠돌 뿐이었다.


언제나 열심히 살던 어느 날이었다. 평일에는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교회 전도사를 겸했다. 평일 예배에도 참석하고, 새벽예배에 나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 때 몸에 이상 증상이 찾아 왔다. 사실 그 전부터 몸은 계속 좋지 않았다. 매일 두통과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몸의 신호를 무시했기 때문일까. 정말 뜬금없이 온 몸에 힘이 빠져 털썩 쓰러졌다. 그렇게 5분을 일어나지 못해 숨을 헐떡거렸다. 체력이 떨어졌나 싶어 수액을 맞았지만 컨디션이 돌아오는 건 잠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울증과 관련된 여러 검사를 해 보았고, 모든 결과가 전문의와의 상담을 권했다. 아, 열심히나 살 때가 아니었다.


Q :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는지

A : 처음에는 우울 장애와 불안 장애가 찾아 왔다. 끝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은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불안하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조금 뒤에 찾아 온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는 나를 어떠한 노력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으니 다할 노력도 없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어지럼증과 함께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 후로는 여러 공포증이 나를 괴롭혔다. 대형 서점이나 아울렛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과 두려움이 온 몸을 덮쳤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멀쩡한 세상에서 나 혼자 삐그덕대는 듯한 외로움이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Q : 자살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A :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뭐든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이 스스로를 지옥으로 내몰았지만, 자살 역시 완벽을 추구했다. 실제로 병원에 처음 갔을 때 3주 분량의 약을 받았는데, 이걸 한 번에 먹으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사경을 헤매다 눈을 떴을 때를 생각해 봤다. 건강은 더욱 안 좋아질 테고, 직장 역시 더 다니지 못함이 분명했다. 죽게 된다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겠지만, 죽지 못한다면 더 큰 고통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완벽히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해 살다 보니 지금은 제법 건강하게 살고 있다.


Q : 우울증을 겪고 느낀 점이 있다면?

A : 보통 우울증은 나쁘다는 인식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우울증 덕분에 삶에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내 몸은 계속해서 나에게 신호를 주었다. 날 괴롭히던 만성 피로는 사실 그만 좀 쉬라는 몸의 신호였다. 그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열심히 살아 가니, 이제는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해 버렸다. 움직이질 못 하니 쉴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아팠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힘을 빼고 살아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여유를 가질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 오기도 한다.


Q :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제발 병원에 가라. 모든 병이 그렇듯 초기에 병원을 방문하면 훨씬 수월한 대처가 가능하다. 약을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와의 상담도 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전문가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큰 위로가 된다. 우울증은 명백한 병이며 치료가 가능하다. 간혹 좋은 병원에 가기 위해 방문을 미루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플 때는 당장 가까운 병원에 가면서 왜 정신과에 갈 때는 이것저것 따지게 될까. 당장 가까운 병원에 전화부터 해 보자.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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