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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o Oct 02. 2022

나는 불효자다

어머니는 불안에 떨며 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이 경찰 둘을 데려왔다. 그녀는 이 낯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함께 온 복지사는 이럴 때일수록 내가 단호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들의 괜찮다는 말에, 그녀는 이제야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아직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 아들이 본인을 어디에 데려가는지도 모른다. 그저 아들의 괜찮다는 말만 듣고, 두려움을 삼키고는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향한다. 어머니가 조현병을 앓은 지 10년 만에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였고, 그 날 밤 불효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으로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건 14살 때의 일이었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조현병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어머니는 종종 본인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거나, 국가가 우리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TV나 라디오를 틀어 놓고는 대화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혼잣말이 많아졌다고만 생각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는 홀로 집안을 이끌었다. 어머니는 강한 여자였다. 조현병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로써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방문 과외를 하며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가정을 이끌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언제부터 악화됐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점점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어떠한 경제 활동도 하지 않았다. 경제 활동 뿐만 아니라 집 밖을 나가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잘 다니던 교회도 그만두었고, 간간히 연락을 하던 친구들과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매일 TV를 틀어놓고 언쟁을 하였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싫어 신경질을 냈다. 집안 상황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나를 홀어머니에게 고마워하지 않는 불효자 취급했다. 도움 안 되는 어른들의 핀잔이 듣기 싫어, 나는 더더욱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어머니의 강제 입원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어렸다. 지금까지 나를 키워 준 어머니를, 남편도 없이 모진 삶을 살아 온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미성년자인 내게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다른 친척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차마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말하기란 어려웠다. 말을 한다한들 어른들이 내 말을 들어줄 거란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대학에 가고 나서는 조금 괜찮았다. 당장 어머니를 보지 않으니 괴로울 일도 없었다. 물론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군입대를 기점으로 어머니는 급격히 망가졌다. 


훈련소는 내게 지옥과 같았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부대에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나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를 받았다. 한 번은 간부가 군 면제 심사를 받아보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차마 어머니를 팔아 군 면제를 받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떤 형태로든 어머니의 문제를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아들이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망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급기야 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망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병을 외면한 벌을 이제서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어머니를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다음 휴가 때는 어머니를 입원시켜야겠다고 결심했으며, 행정보급관은 부모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는 자식이라며 내게 핀잔을 줬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 차마 부모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어선 안 되니, 어머니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방관해야 했을까.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일찍 결심하지 못해 후회가 된다. 내가 조금 더 어머니의 상태에 관심을 가졌다면, 어쩌면 어머니는 지금쯤 병원 밖에서 지내고 있진 않았을까.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기 전까지, 나는 어머니의 상태를 방관하는 불효자였다. 어머니의 입원을 결정한 순간, 나는 부모를 정신병원에 집어 넣는 불효자가 되었다. 세상은 아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남편을 잃고 조현병까지 앓는 불쌍한 홀어미만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방관한 불효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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