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속 아이소포스
‘개미와 베짱이’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솝우화의 저자 아이소포스(Aesop, Aisopos)는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헤로도토스의 저서인 ‘역사’에서 소개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솝은 아이소포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후술 할 내용에선 익숙한 이름 이솝으로 부르겠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이솝이 고대 그리스의 노예 신분이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 뛰어나 결국에는 자유인 신분으로 되지만 ,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델포이 시민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 실려있다고 한다.
당시 노예는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 정도로 여겼다. 물건처럼 거래가 되는 재산으로 분류되던 그리스 사회에서 이솝은 단지 재능이 많은 노예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근면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데, 내가 만약 노예상인에 의해 팔려온 이솝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노예로 팔려와 속박당한 채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데도 더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하니 주인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특한 일이겠는가. 내가 같은 노예의 입장이었다면 분노에 찬 눈으로 이솝을 째려봤을 것이다.
이런 우솝의 배경을 머릿속에 장착한 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다시 살펴봤다. 이솝은 식민 사업이 활발했던 그리스의 주변 지역에서 노예선을 타고 그리스로 왔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이솝은 흑인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동화에 등장하는 개미는 일개 일개미일 뿐이다. 여왕개미의 감시하에서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이솝의 상황은 개미와 참 많이 닮아있다.
베짱이는 억울하게 일하고 있는 개미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리고 발로 차면서 시비를 거는 캐릭터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 혹은 욜로를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 등 베짱이를 재해석하는 견해도 있다지만, 일하고 있는 일개 일개미를 골려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응징을 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혹시 베짱이는 귀족 신분인 노예의 주인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토끼와 거북이’도 그렇다. 느림보라고 깐죽거리던 토끼가 거북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경기를 하게 된 원인이었다. 이야기에서는 토끼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거북이가 경기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무리한 설정이 꽤 있다. 예컨대 토끼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편히 쉴 수도 있는 노릇인데 구태여 경기 도중이 낮잠을 잔다는 설정과 거북이가 자신의 열등한 피지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토끼에게 달리기 경기를 제안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만약 다시 경기를 하면 거북이는 절대로 토끼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토끼는 태생적으로 우월했고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거북이가 승리했다. 혹시 이솝이 자신의 모습을 거북이에 투영시켜 신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솝은 왕의 신임을 얻어 노예에서 자유인 신분이 되었다고 한다.
내 주장에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솝은 뛰어난 재능과 지혜 덕분에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왕의 신임까지 얻어 그 처우가 일반 노예와는 달랐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비교적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분제의 굴레에 매여있는 이상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