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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Mar 22. 2024

도시, 빈


여행을 다녀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해 파리를 거쳐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리스본, 그리고 다시 빈으로 돌아와 하루 묵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보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유럽은 어떤 느낌일지, 프랑스를 뒤로하고 떠날 땐 다신 이곳에 오지 않으련다 하는 마음이었는데(몸이 아프니 마음도 힘들었고..) 긴 시간  뒤에 다시 찾은 이곳은 그때의 기억을  지워주려는 듯 반갑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십 대 언저리의 나보다 오십 대가 된 지금, 한 뼘쯤은 폭이 넓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궁정원의 모짜르트 동상, 잔디밭에 곱게 핀 높은음자리표꽃^^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포르투갈이다. 유럽으로 차 문화가 전해진 것도 대항해시대 선두 격인 포르투갈이 그 첫 발을 내 디디며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유럽에서 차를 cha라는 표기(차, 티는 모두 중국어이고, cha(만다린어)는 육로로, tea(푸젠 방언)는 해로를 통해 차를 들여온 나라들이 차를 표기하는 방식이다)로 쓰는 유일한 나라이기에 차 애호가인 나로서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 마음에 품었던 것이다. 차도 그렇지만 푸른 타일의 아줄레르 또한 내 마음을 움직였는데, 차에 대한 관심은 도자기로 확장되었고, 그 관심으로 읽은 『유럽 도자기 여행(조용준 저)』은 마음을 더욱 달구었더랬다. 도심을 수놓을 푸른 타일의 향연은 사진 만으로도 벅차게 다가왔기에 오랜 시간 마음에 푸른 물결을 일게 만들었다. 기대를 품으니 이루어지는 날도 온다.

포르투의 알마스 성당 아줄레르

남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날짜와 가고 싶은 장소 등 대략적인 것들만 관여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남편이! 남편의 여행 계획은 언제나 믿음이 간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공이다. 출발부터 되돌아오는 순간까지 내가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게 완벽하게 준비하기에!) 포르투갈로 가는 직항이 코로나 이후 없어졌기에 남편은 빈에서 시작하는 여행 루트를 짰다. 프랑스에 살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저곳 여행을 하긴 했지만 오스트리아 빈은 한 번도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음악의 도시 '빈'은 어떤 분위기일까? 이웃 나라 독일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착각이었다. 빈은 내게 설렘의 도시가 되었다. 여태껏 가 본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파리처럼 화려하지도, 스페인이나 이태리의 여느 도시처럼 활기차지도, 베를린처럼 묵직하지도 않은, 과하지 않고 고상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돋보이는 여긴 나의 도시! 나의 도시라는 표현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왜 '빈'을 이제서야 오게 되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빈은 내게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다가왔다.


오페라극장 앞을 지나는데 바닥에 말러의 사인이 있다. 그뿐인가 사방에 유명 음악가들의 사인과 동상이 빙 둘러 있으니 음악을 듣지 않아도 내 귀에는 이미 음악이 흐른다. 생각난 김에 핸드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고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들으며 걸었다. 이 음악은 영화감독들이 선호하는지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이 외에도 많은 영화에서)에서도 반갑게 만날 수 있다. 빈이 음악의 도시이긴 하지만 어디 음악뿐일까, 금장으로 화려하게 그림을 그리던 화가 클림트의 작품을 만나러 벨베데레 궁도 찾았다. 그의 화려한 그림들보다 자연을 그린 수수한 그림이 더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가서 본 그의 그림 '키스'는 상상보다 훨씬 더 감동이었다. 왜 이 그림을 프랑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비교하는지 알 수 있었다.(사실 루브르의 모나리자보다 더 감동이었음!) 클림트와 말러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선이 없을 것 같지만 '알마 말러'라는 여인이 그들 사이에 있다.(알마는 클림트의 친구 딸이었고, 당시 17세였던  알마와 클림트는 잠시 연인 사이였다. 클림트는 외모와 달리 정말 바람둥이였슴!) 알마는 말러의 아내였지만 숱한 예술가들 사이에 여왕벌처럼 존재했기에 그녀를 빈의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알마 말러를 잊을 수 없어 그녀와 똑같은 크기의 인형을 제작해 함께 연주회도 다니고 식당에도 가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도 클림트의 그림과 나란히 벨베데레 궁에 전시돼 있으니, 예술사와 인간사의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작품들 사이를 흐르고 내 마음도 요동을 친다.(한 자리에서 역사적인 이 모든 작품과 그 마음들을 엿보는것 같아서) 말러는 아내의 외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팜므파탈 같은 그녀의 삶은 그의 음악뿐 아니라 다른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에  숱한 자극과 열정을 불어 넣어 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알마 말러에게 뮤즈라는 단어를 입히고 싶지 않다. 그녀의 소란한 삶이 가져온 여러 불행을 생각하면 말이다.


인간의 역사는 예술을 낳고, 그 작품들 사이 흐르는 마음을 읽는다.

귀에 들리는 선율도, 눈에 보이는 색과 명암, 구도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모두 지난 시간들의 흔적이지만 왠지 살아 움직이듯 내게 전해지는것만 같다.


도시가 나를 위로하는 느낌..

말없이 가만히 앉아 들어주는 넉넉한 마음처럼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을 느끼며 걷도 또 걸으며 묻는다.

이 편안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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