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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공부

자기 연민이 위험한 이유

by winter flush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해요.'

'오늘은 자신을 위해 선물을 하세요.'

'자신이 믿는 대로 머뭇거림 없이 밀고 나가세요.'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세요.'

'옳은 신념을 고수하세요.' 등....

얼핏 보면 다 옳은 말이고, 좋은 조언인 듯싶다. 그러나 누구에겐 조언이 되는 말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언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상대가 어떤 기질의 사람이고, 어떤 신념으로 삶을 살아가지는지 우린 모른다. 그저 나와 같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뿐이다.


부부 갈등으로 유명하다는 상담사를 찾아가 아내가 상담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말을 하며 나를 찾아온 아내의 남편. 아내가 1년 사이 걷잡을 수 없이 변했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부부를 이미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삶의 형태가 선명한 지도처럼 읽혔다. 아내는 안으로 움츠러드는 사람. 작은 자극에도 달팽이처럼 안으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런 사람. 외부의 자극을 자신 안에서 이유를 찾으며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 자신감은 줄어들고 자존감은 바닥에 닿아 누군가의 지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어모드로 돌입하는 시점에 이르자 그녀는 서서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더 안으로 숨어 들어갔고, 이젠 원가족과도 남편과도 거리를 두고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세요.'라는 상담사의 권고를 무기로 아내는 어떤 이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친정 엄마와의 관계를 정리하라(정말 그렇게 말했을까?)는 상담사의 조언은 숲을 보지 못한 오류의 처사다. 내담자의 입장에서 전해 들은 말이 전부일 거라 여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건 단지 내담자의 시각으로만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들은 이야기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위험하니 엄마를 멀리하고 관계를 끊으세요'라는 말의 힘은 강력했다. 아내가 점점 무섭게 변해간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그 가정의 심각성과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자신을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상담사의 말은 그녀에게 절대적인 힘을 얹어주었던 것 같다. 내담자의 피해망상적 사고를 더욱 공고히 굳히게 만든 한마디 한마디가 무기가 되어 이젠 가족을 향해 휘두른다. 아내의 남편은 크게 고통받고 있었다. 아내가 보는 세상의 어두움과 사실의 왜곡,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닫힌 마음 그 안엔 분노와 비뚤어진 시각만이 남았다. 아내는 자기 연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기 연민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하는 제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내몰고 세상으로부터 방어 모드로 돌입해 내면의 어둠을 향하고 우울로 빠지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몰아가는건 아닐까. 건강한 자기 연민과 그렇지 않은 경계를 알아차림 해야 한다. 상황의 숲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바라보는 오류가 깊어질 때 왜곡된 자기 연민으로 빠질 수 있다. 그로 인해 가까운 가족이 오히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엔 눈을 감아 버린다. 자기 연민이라는 두꺼운 망토를 걸치고 그 안에서만 숨 쉬고 있기에 도와주고 싶어도 닿을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부풀려 그 감정에 몰입하며 소통을 거부하니 가족은 벽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해결점을 찾지 못해 헤맨다. 자기 연민의 본뜻을 오해한 채 몰입된 감정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관계에서 벌어진 틈은 점점 더 균열되고 분리될 것이다. 세상과 소통이 힘든 그 순간,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알아차림'해야 할 순간이다. 그러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각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가는 방향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 아닌지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의 시선이 굴절되어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보는 세상의 렌즈를 자주 점검해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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