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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is Sep 29. 2021

"만나서 얘기 좀 할까요" 그런데 팀원이 제주도에 있다

[메타버스의 명암] ④지옥철만 안 타면 괜찮은 걸까



"메타버스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채용'입니다. 지역이나 거리에 제한 없이 인재를 채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회사에 있는 인재도 어디서든 근무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든, 보라카이에서든 근무 가능합니다. 이런 장점은 인재가 회사를 떠나지 않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메타버스 근무 툴을 세일즈하는 기업의 담당자들은 언론 인터뷰 때마다 '채용의 원활함'을 강조한다. 


"서울 집값 폭등 때문에 수도권 및 지방으로 이탈한 IT 인재를 메타버스로 채용할 수 있다"

"해외 개발자도 해외에서 그대로 근무할 수 있으므로 메타버스 및 원격근무를 선호한다"


remote interview ⓒiStock by Getty Image


이런 말들은 허황된 수사는 아니다. 실제로 메타버스 근무의 장점이 맞다.

출퇴근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점, 집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퇴근하면 1초만에 침대에 누울 수 있다),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 리조트에서든, 제주도 펜션에서든, 고향 부모님 댁에서든 일할 수 있다는 점,

서울에서 구하기 어렵던 신혼집을 거리낌 없이 경기도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 어찌 장점이 아니랴. 


그런데 조직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주 소통해야 하는 동료와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발생했거나, 리더 포함 팀원 간에 다소 심각한 오해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만나야 한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만나서 1 on 1, 커피챗, 점심 또는 저녁 미팅 등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섞어가며 소통해야 한다. 


"우리, 만날까요?" 

그런데 이 대사를 꺼내는 순간 메타버스 근무의 근본적 고민이 드러난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만나죠?"


서울과 제주의 거리. 과연 가까울까? ⓒBusiness Insider


팀원들이 한 명은 서울에, 한 명은 뉴욕에 산다는 식으로 과장하지 않겠다. 실제 목격한 사례를 전한다.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한 팀은 총 8명이었는데,

팀 리드와 팀원 1명은 서울에 살았고, 3명은 경기도에 살았다.

나머지 3명은 집은 수도권이었으나 1명은 강원도 리조트에서, 1명은 부산 부모님 집에서, 1명은 제주도 에어비앤비에서 원격근무 중이었다. 


당신이 팀 리드라면, 이들에게 어떻게 모이자고 하겠는가?


서울과 경기도만 하더라도 미팅을 조율하기 골치 아픈 거리다. 

'서울-경기도 정도 거리도 이슈로 친다니,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서울 중심으로 사고하거나, 대면 근무를 디폴트로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 회사로 출근하는 가운데, 미리 2~3주 전에 조율해서 정한 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는 미팅이라면, 경기도에 거주하는 팀원이 '양해'해줄 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집에서 메타버스로 원격근무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팀 리드는 서울 강남에 사는데, 

각각 분당, 수원, 일산, 남양주에 사는 팀원 4명에게 미팅을 제안하면서 "경기도보다는 서울이 모이기 용이하지 않겠냐. 광화문이나 강남에서 모이자"고 말한다면.

(한국의 세대별 거주 지역 분포상 이런 경우가 정말 흔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본사 사무실'이 아예 없는 것이다. 


팀원들은 그날 아침 오랜만에 6시쯤 기상해 출근 준비를 하고, 7시쯤 집에서 나와서 지옥철을 탄 다음, 9~10시까지 서울 중심부의 한 카페나 공유오피스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팀원들은 생각한다. 


'이런 짓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이 회사 입사한 건데.' 


miscommunication due to remote work ⓒRingCentral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미팅인데, 모이기 전부터 팀원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생기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회의가 싹튼다. 


그리고 그날 업무와 미팅을 마친 다음, 

팀 리드는 택시를 타며 "조심히들 들어가! 모이니까 역시 좋네. 또 보자구."라며 손을 흔들고,

팀원들은 각자 2시간가량의 이동을 거쳐 귀가한다. 


그리고 팀원들은 생각한다.

'설마 다음 달에도 모이자고 할까? 제발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메타버스 근무 하에서 대면 소통이 성사되기까지가 왜 어려운지를 설명했다. 


사람 간의 소통이라는 것은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팀리드가 팀빌딩을 위해 소통을 추진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사람과 소통하기를 좋아하고 갈구하는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다.

그래서 소통은 어느 한쪽이 제안하게 된다. 소통을 원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쨌든 여러 어려움을 뚫고, 원래는 메타버스에서 원격근무하던 사람들이 대면 소통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이 다음 단계에서 정말,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메타버스 근무가 기본값인 회사에서 대면 소통을 이루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대면 소통을 지양'하게 된다. 


ⓒiStock


대면 소통을 하기까지 난관이 너무 많으므로,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잦아지거나 부정 이슈가 발생해도 

비대면 소통으로 최대한, 끝까지,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각자 근무공간(거주지역)이 멀기 때문에 조율하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팀리드 입장에서 팀원들에게 먼 거리를 이동하라고 요청하기가 부담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혹은, 대면 소통이 필요한 줄 알면서도 "이 정도는 화상회의로 얘기 나누시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지옥철은 이제 타지 않아도 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한 이들이다. 


이들은 끈끈한 팀빌딩을 위해 노력하려고 모이지 않았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조직원 모두가 지향해야 할 점이지만, 모두의 R&R은 아니다. 


메타버스에 모인 이들이 회사에 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원활한 업무, 그에 따른 임금 등 보상, 그리고 원격근무의 편리함이다. 


어떤 순간이 오면, 이들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같은 것은 기꺼이 포기한다.

회사가 이들에게 채용 광고 등으로 내건 상대적 우선순위 조건이 바로 '원격근무의 편리함'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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