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히다

미노타우로스와 막스 베버의 '강철 감옥'

by 정명

​1. 인간을 잡아먹는 미로

​그리스의 크레타섬에는 '라비린토스'라는 거대한 미궁이 있었다. 천재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이 미로는 구조가 너무나 복잡하고 교묘해서, 한 번 발을 들이면 설계자 자신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왕은 이 미로의 가장 깊은 곳에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다.

​그리고 매년 아테네의 젊은 남녀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들은 미로 속에 던져진다. 출구를 찾아 헤매지만, 만나는 것은 막다른 벽이거나 굶주린 괴물뿐이다.

그들이 죽는 이유는 괴물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길을 잃었다'는 절망감, 이 시스템 안에서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공포가 그들을 먼저 무너뜨린다.

​2. 베버와 강철 감옥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가 '합리성'을 추구하다가 도리어 '강철 감옥(Iron Cage)'에 갇히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현대 조직(관료제)은 효율성을 위해 모든 것을 규칙으로 정한다. 업무 매뉴얼, 위계질서, 분업화. 이것들은 처음엔 일을 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규칙을 위한 규칙'이 되어 인간을 지배한다.

​베버는 예언했다.

"영혼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들."

이 감옥 안에서 인간은 부품으로 전락한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목적)은 사라지고, "규정에 맞는가?"라는 질문(절차)만 남는다.

시스템은 정교해지는데, 그 안의 인간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역설. 그것이 베버가 말한 강철 감옥이다.

​3. 결재 라인이라는 이름의 미궁

​사무실을 보라. 파티션으로 나뉜 책상들은 마치 라비린토스의 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미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바로 전자 결재 시스템이다.

​기획안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관문들.

대리 - 과장 - 차장 - 팀장 - 본부장 - 대표이사...

이것은 현대판 미로다. 서류는 이 복잡한 라인을 돌고 돌다 길을 잃는다.

​"규정에 어긋납니다." "전례가 없습니다." "합의 부서 도장이 빠졌습니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이 차가운 반려 사유들이 바로 미노타우로스다.

그들은 내 기획안(제물)을 찢어발긴다.

합리적인 절차라고 하지만, 사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놓은 방어막일 뿐이다.

​우리는 이 미로 속에서 에너지를 다 쓴다.

일의 본질(성과)을 만드는 데 쓰는 시간보다, 내부 설득과 서류 꾸미기(미로 찾기)에 쓰는 시간이 더 많다.

결국 우리는 괴물을 죽이는 영웅 테세우스가 되지 못하고, 미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낙오자가 된다.

​4.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신화 속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힘이 세서가 아니다. 공주 아리아드네가 쥐여준 '실타래' 덕분이었다. 들어올 때 풀어놓은 실을 따라가면, 아무리 복잡한 길이라도 다시 입구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도 실타래가 필요하다.

이 복잡하고 무의미한 관료제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줄 단 하나의 끈.

그것은 '일의 목적(Why)'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규정이 그러니까"라고 뇌를 끄는 순간, 당신은 미로의 부속품이 된다.

"도대체 이 짓을 왜 하는 거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라.

그 삐딱한 질문만이 당신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임을 증명하는 실타래다.

​물론 질문한다고 회사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강철 감옥은 튼튼하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의 영혼이 미로 속에서 굶어 죽는 것은 막아줄 것이다.

퇴근길, 건물을 나서며 뒤돌아보라.

저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가 당신을 삼키지 못했음에 안도하라. 당신은 오늘 무사히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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