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울의 식탁
황량한 사막의 무덤가, 밤이면 나타나 땅을 파헤치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구울(Ghoul)’이라 불리는 이 존재는 살아있는 자를 사냥하기보다,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시신을 탐합니다. 더욱 기괴한 것은 그들이 죽은 자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 죽은 이의 형상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울은 무덤 속의 잔해를 삼키며 그 주인인 양 행세하고, 다시 새로운 무덤을 찾아 떠도는 영원한 기생의 존재입니다.
이 기괴한 망령의 서사는 오늘날 우리의 ‘비정한 소비 방식’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이나 과거의 고통을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실패담, 비극적인 사건, 혹은 이미 끝난 과거의 파편들을 들춰내어 그것을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삼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씹고 뜯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무덤을 파헤쳐 죽은 자의 살을 먹는 굴의 허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구울의 변신은 우리 삶의 가짜 주체성을 꼬집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를 세우기보다, 성공한 누군가의 습관, 유명인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껍데기를 그대로 가져와 내 것인 양 포장합니다. 타인의 잔해를 삼켜 내 외형을 꾸미는 행위는 잠시 나를 훌륭해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내 진짜 얼굴이 될 수 없습니다. 구울이 아무리 죽은 왕의 가죽을 뒤집어써도 본질은 괴물인 것처럼, 타인의 것을 도용한 삶에는 주체라는 생명력이 흐르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선다는 것은, 타인의 무덤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면을 개간하는 일입니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며 나의 안도감을 채우는 비겁한 허기를 버려야 합니다. 또한 타인의 삶을 복제하여 나를 증명하려는 욕망을 멈춰야 합니다. 비록 나의 현실이 거칠고 볼품없을지라도, 타인의 잔해로 만든 가짜 얼굴보다는 스스로 땀 흘려 빚어낸 초라한 민낯이 훨씬 고귀합니다.
지금 당신의 식탁 위에는 무엇이 놓여 있습니까? 혹시 누군가의 아픈 과거를 가십이라는 이름으로 씹어 삼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껍데기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남의 인생을 훔쳐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인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멈추십시오. 죽은 자의 살로는 당신의 영혼을 채울 수 없습니다. 구울의 변장술을 던져버리고 당신만의 황량한 사막 위에 홀로 서십시오. 그 외로움과 허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당신은 비로소 누군가의 잔해가 아닌 '나'라는 유일한 생명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