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호의 외눈
슬라브의 전설에는 깡마른 몸에 눈이 하나뿐인 기괴한 노파 혹은 거구의 형상을 한 ‘리호’가 등장합니다. 리호는 숲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길을 잃은 여행자 앞에 나타납니다. 리호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닙니다. 일단 리호와 눈이 마주치거나 그와 접촉하게 되면, 리호는 여행자의 등에 달라붙어 절대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여행자가 하는 모든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삶은 서서히 악운의 구렁텅이로 빠져듭니다. 여행자는 리호를 떼어내려 애쓰지만, 리호는 비웃듯 속삭입니다. "내가 너의 운명이다."
이 기괴한 악령은 현대인이 흔히 빠지는 ‘피해자 정체성’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뜻밖의 불행이나 상처를 마주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대신, 그 불행을 자신의 등에 업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나는 원래 운이 없어", "내 인생은 저 사람 때문에 망가졌어"라는 말을 방패 삼아, 스스로를 ‘리호에게 선택받은 불행한 주인공’으로 규정합니다. 불행을 등에 업고 다니며 타인의 연민을 구하고, 자신의 게으름이나 실패를 '악운' 탓으로 돌리는 안락한 도피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리호는 주인이 주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먹고 자랍니다. 당신이 과거의 상처를 곱씹고,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불운한 존재로 믿을수록 리호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져 당신의 허리를 꺾어놓습니다.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은 리호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입니다.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등에 업힌 괴물이 사실은 자신이 붙들고 있는 '집착'이라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선다는 것은, 내 등에 업힌 리호의 목을 꺾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일입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 불행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을지 말지는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내 운명이 아니라, 내가 잠시 지나가는 비바람일 뿐이다"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리호가 당신의 귀에 대고 절망을 속삭일 때, 그 목소리를 단호히 거부하고 당신의 발로 단단한 지면을 딛고 서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등 뒤에는 무엇이 매달려 있습니까? 혹시 오래전 끝난 실패나 상처를 '리호'라는 이름의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그것이 당신의 전부라고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행에 권위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리호를 응시하기를 멈추고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실체 없는 악운의 무게는 허망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진짜 삶은 불행의 자루를 내려놓고, 가벼워진 어깨로 내일의 불확실성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갈 때 시작됩니다. 당신을 묶고 있는 것은 리호의 손아귀가 아니라, 불행 없이는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당신의 유약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