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장통, 인색하기로 소문난 과일 장수가 수레 가득 달콤한 배를 싣고 팔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더기를 걸친 노도사가 나타나 배 한 알을 간곡히 청했지요. 하지만 장수는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쫓아냈습니다. 보다 못한 구경꾼 하나가 배 한 알을 사서 노도사에게 건넸고, 도사는 웃으며 그 배를 먹은 뒤 남은 씨앗을 땅에 심었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땅에서 싹이 돋고 줄기가 뻗더니, 눈앞에서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 수백 개의 배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노도사는 그 배를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고, 나무를 베어낸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보던 장수가 정신을 차려 자신의 수레를 보았을 때, 수레에 가득했던 배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더욱 기묘한 것은 수레를 끄는 데 꼭 필요한 '손잡이(끌채)'마저 날카로운 것에 잘려 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사가 나누어 준 배는 실은 장수의 것이었고, 그 배를 열게 한 나무줄기는 장수의 수레 손잡이였습니다.
『요재지이』에 실린 이 기이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얻기 위해, 당신의 수레 어느 곳을 깎아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빨리 목적지에 닿고 싶어 합니다. 더 많은 배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 싶고, 타인보다 앞선 지위에 오르고 싶어 조급해합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부끄러운 욕망이 아니라, 어쩌면 이 거친 시장통 같은 세상에서 내 가족과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솔직한 생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질 때, 우리는 종종 '수익'이라는 배 한 알에 매몰되어 정작 수레를 움직이게 하는 '손잡이'의 안부를 잊곤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이라는 손잡이를 깎고, 성공을 위해 가족과 나누는 저녁 식사라는 끌채를 잘라내며,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작 나 자신의 자존감이라는 바퀴 축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노도사가 보여준 마술처럼, 우리가 얻었다고 믿는 그 화려한 결실이 사실은 내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깎아 만든 환상은 아니었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삶에도 적정한 온도가 필요합니다. 너무 차가운 이성은 우리를 인색한 장수로 만들고, 너무 뜨거운 욕망은 내 수레를 망가뜨리는 줄도 모르게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배 한 알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정작 나를 그곳까지 실어다 줄 수레의 손잡이가 사라져버린 것을 뒤늦게 깨닫는 비극입니다. 손잡이가 없는 수레는 아무리 많은 배를 싣고 있어도 결국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고립된 섬이 되고 맙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수레는 안녕한가요.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그 '배'를 얻기 위해, 혹시 당신을 지탱해 주는 소중한 무언가를 도끼질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진정한 성취란 더 많은 배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수레의 손잡이를 온전히 지켜내며 목적지까지 묵묵히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바위는 무겁고 길은 멀지만, 내 손때 묻은 손잡이를 꽉 쥐고 걷는 그 정직한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의리(義)일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지 못했던 장수의 인색함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인색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빨리'라는 주문에 걸려 소중한 오늘을 베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자문해 봅니다.
배 한 알의 달콤함보다, 내 손바닥에 닿는 수레 손잡이의 단단한 질감을 믿으며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비록 무겁고 더딜지라도, 당신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할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