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May 19. 2018

코끼리의 역습

#10. 보츠와나

숲으로 돌아가는 코끼리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나와 정대원은 적당한 캠핑 장소를 찾기 위해 쉼 없이 페달을 밟았다.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정대원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코.... 코끼리!!!!"
"어?! 어디 어디????"
정대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과 30M 전방에 거대한 무언가가 서있었다. 
코끼리였다. 너무 갑작스럽게 나타난 코끼리에 우리는 얼어버렸다. 그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

"....."

약 3초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상태로 시간이 멈췄다.

"뿌~~~~~~~~~~~~우~~~~~~~~~~"

정적을 깬 건 코끼리였다. 코끼리가 굉음을 내며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그제야 위험한 상황임을 감지하고는 다시 미친 듯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보니 코끼리를 만난 곳은 마크게이딕가디 판스 국립공원(Makgadikgadi Pans National Park) 초입이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야생의 나라 보츠와나구나"

 처음으로 마주친 코끼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어떻게든 오늘 하루 안전히 보낼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정말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이걸 어쩌나 싶을 때쯤 저 멀리 송전탑이 보였다. "그래, 저기라면 안전하겠어!" 미약하게나마 쳐있는 송전탑 주위의 울타리가 요새 부럽지 않게 느껴졌다. 

 내일부터가 고비다. 그웨타(Gweta)까지 가야 하는데 이제 겨우 국립공원 초입이니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부터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두려움과 큰 즐거움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믿으며 기도와 함께 잠을 청한다. 

소 떼? 얼룩말 떼!

이튿날. 상위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너무 늦게 그렇다고 너무 일찍도 아닌 시간을 고민하다 아침 7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저 앞에 소 떼가 있는 것 같아" 

10km 정도 이동했을까? 정대원이 소리쳤다. 가까이 가보니 소보다는 한참 빠른 얼룩말 떼였다. 

이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우리를 지나는 차 한 대가 멈춰 서서 한 마디 건넨다.  

"얼룩말이 떼 지어 이동하는 걸 보니 근처에 사자가 있는 모양이야"

"왓?"

죽기 살기 페달을 밟았다. 약 100km를 이동하면서 이날처럼 서로 말이 없었던 적도 없었다. 살면서 1분 1초가 이렇게 소중한 적이 있었는지 싶을 정도로 달렸다.  

도... 독수리 떼????

그래 이런 거 동물의 왕국에서 본 적 있어. 

하지만 보츠와나에서의 자전거 여행이 마냥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상냥한 기린 가족과 함께 라이딩 한 순간은 잊지 못할 명장면 중 하나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추억이자 선물이다. 

여행하며 수시로 만나게 되는 기린과의 마주침은 치유가 되는 순간이다. 

치타로 보이기 시작한 고양이. 혹시 치타?

 마크게이딕가디 판스 국립공원을 지나 A33도로를 타고 북상하면 초베(chobe) 국립공원을 지나게 된다. 초베에 가까워질수록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코끼리에 주의하며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나무색과 비슷해서 눈치채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코끼리를 만날지도 모른다. 힘에 부칠수록 점점 숙여지는 고개는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의식하며 멀리 보고 미리 위험으로부터 대비하는 것이 옳다. 

초베(Chobe)로 이어지는 A33도로에서 코끼리와 마주치는 빈도수가 현저히 늘었다.  

저 멀리 뚝심 좋게 서있는 기린이 보인다. 그래도 상냥한 그 이기에 가까이 다가가면 비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역시나 친절히 길을 열어준다. 

잠시 쉬어가기도 어렵게 만드는 문구다. 보츠와나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을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역으로 부는 바람을 뚫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코끼리의 순간 속도를 뛰어넘을 수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힘든 보츠와나 여행이다. 

A33도로를 타고 이동하던 이틀째 되던 날,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 중인 차랑 한대가 멈춰 섰다. 

"스탑 스탑"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인 듯 보였다. 우리를 멈춰 세우고는 자전거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니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고 차 트렁크까지 열어 보인다. 위험하기도 위험하거니와 불어오는 역풍도 너무 심해 속도가 나지 않아 히치하이킹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차량이었기에 그들을 위한답시고 쿨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조금 더 가보고 꼭 히치하이킹할게!"

A33도로가 약 100km 남은 지점까지 오는 동안 조금 과장을 더해 한국에서 길냥이 보듯 코끼리가 보인다. 마침 저 멀리 대형 화물차가 서있어 히치하이킹하기로 했다. 그러나 차량에 문제가 생겨 그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행 두 번째 히치하이킹 상대는 관광버스였다. 너무나 쉽게 도움을 허락한 사람들. 감사하다.

초베(chobe)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기린도 코끼리도 아닌 나와 정대원이었던 모양이다. 유쾌한 사람들과 사진을 남긴다. 

마을을 활보하는 멧돼지*

도움받은 덕분에 계획보다 빨리 목적지 카중굴라에 도착하게 됐다. 카중굴라는 보츠와나 여행의 마지막 마을이며, 내일이면 네 번째 나라 짐바브웨 국경을 넘는다. 마을을 활보하는 멧돼지들을 지나 적당한 캠핑사이트를 찾아 헤맨다. 

더 빅 파이브 초베 로지(The big 5 chobe lodge)에서 캠핑이 가능하다고 하여 그곳으로 향하던 중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맞이한다.

무덤이 될뻔한 곳

"뿌~~~~~~~~~~~~~우우~~~~!!!"

"어?.... 어????? 으악"

앞서가던 정대원이 자전거를 버리고 뒤돌아서더니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나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정대원을 따라 도망쳤다. 

"뿌~~~~~~우~~~~ 쿵쿵 쿵쿵"

코끼리였다. 우리를 추격해 나무를 헤치며 길가로 나온 코끼리가 버려진 자전거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한참을 도망쳐 있는 나와 정대원을 노려본 후 서서히 뒷걸음치며 숲으로 돌아갔다. 목적지 약 200M를 목전에 두고 새끼 코끼리와 함께 있는 어미 코끼리를 보지 못한 체 그 길목을 지나려다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자전거로 이동하기 어려운 흙밭 이어 속력이 나지 않았기에,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치치 않았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기에 살 수 있었다. 

"하..........."

"어떻게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인데 코끼리가 나오지?"

The big 5 chobe lodge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코끼리의 굉음과 같은 울음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로지(Lodge) 주인장 백인 할아버지도 200m도 안 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나와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This is Africa, You are in Africa!" 

"They can kill you in a second!"

충분히 주의한다고 주의했고 위험한 구간은 잘 판단하여 히치하이킹했다고 생각했다. 분하지만 할아버지 말이 맞다. 이곳은 아프리카고 나는 그들에 의해 순간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마을에 도착해 겨우 안심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방심할 수 없는 곳이 아프리카고 야생의 나라 보츠와나다. 나와 정대원은 이날 처음으로 이번 여행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한 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여행...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

정말 죽을 뻔한 경험을 하고 나니 물음에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서로가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 이내 하루를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여행을 여느 때와 같이 준비하고 있었다. 스스로 원하고 계획한 이 여행을 한순간의 사건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음을 말없이 서로가 느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생을 달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