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도, 거절도 내겐 너무 어렵다.
3년 남짓한 회사생활을 되돌아보면 나는 정말 많은 부분에서 사회화가 덜 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표정관리를 잘 못해서 기분이 안 좋으면 바로 티가 나기도 했고 점심시간에는 식비를 아끼고자 도시락을 싸와서 혼자 먹었다. 점심 혼자 먹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으나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직장에 대한 직원들의 솔직한 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상사를 욕하기도 하고 누군가에 대한 험담도 함께 한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회사 돌아가는 소식이나 정보에 뒤쳐져서 눈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 자리에 없는 그 사람은 타깃이 되기도 하며 가만히 있으면 왜 조용히 있냐, 그 사람 편을 드는 거냐고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사회에 나가면 왕따같이 유치하고 부도덕한 일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로 인해 퇴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이 힘들지, 일이 힘들게 하겠나 하는 부분이다.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됐던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 역시 대인관계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은 대학교였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 전임자가 없었을뿐더러 학교는 일반 회사와 달리 정확한 업무 구분이 없고 매번 다양한 교육과 행사와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도 더 많고 업무의 범위도 넓고 다양한 편이다. 또한 전임교수의 지시에 의해 업무가 돌아가는데 아마 대부분의 대학교 교수들은 업무 처리 방식에 문외한일 가능성이 크다. 실무와 행정 사이에서 고전하는 것은 늘 담당 연구원들의 몫이다. 게다가 나는 원래 대학원에 가서 심리 상담사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엑셀이나 한글도 잘 다룰 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서툰 내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어야 하는 일은 윗 상사에게 업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부탁도, 거절도 너무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탁을 할 수 있으려면 내가 그 일을 혼자서 해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마치 그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고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나는 일의 성과를 통해 그들에게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는 것이 내가 버림받지 않고 생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못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고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 보니 혼자 전전긍긍하며 마음고생하고 있는 건 나였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거나 지적을 받으면 자존심이 크게 상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실망스러웠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금기어가 되었다. 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렸던 것도 아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혼자 밥을 먹게 되는 때가 많았으며 이를 실감했던 순간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였다. 보통 퇴사라는 말은 회사에서 정말 신중하게 말해야 하는 단어이다. 직장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나에게 있어 퇴사는 최후의 카드였다. 하지만 동료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나의 퇴사를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꾸미 씨, 퇴사할 거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결정해서 상사에게 보고하는 게 예의입니다.”
“퇴사”라는 단어에 담긴 나의 진짜 속 마음은
나는 지금 힘들고 너의 위로가 필요해라는 처절한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