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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의 그늘 Nov 30. 2023

매주 도서관 가는 일기: #해시태그 한국 독립운동사

23.09.24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으로 시작해 역사 교과서에서 중요한 것들이 점점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치를 떨 때마다 나는 절반 정도는 분노를, 나머지 절반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역사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해왔지만 확실히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의 요약본을 읽었을 때였다. 국방부 대변인에게 던져진 날카로운 질문에 속이 다 시원했지만, 잠들기 전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몇 개나 되지?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에 <아무 날에 독서모임> 책에서 추천받은 이후로 청소년 도서를 종종 읽곤 했는데 이번에야 말로 청소년 도서의 도움을 받을 시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린 역사 공부를 하려면 고등학생, 아니 그보다 더 어린 학생을 타깃으로 한 도서만이 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역사서 코너로 가면 생각보다 많은 독립 운동사에 관한 책들이 있다. 그중에 적당한 두께의 <해시태그 한국 독립 운동사>라는 제목의 책을 빌려 도서관을 뛰쳐나왔다. 카페인과 함께 읽어야 한다!


<청소년을 위한 #해시태그 한국 독립운동사>라는 원제대로 이 책은 독립 운동사를 최대한 이야기처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요즘 세대에겐 ‘키워드’보다 익숙한 ‘해시태그’를 더해 중요한 정보는 짧은 어절로 다시 한번 정리해서 알려준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어려운 한자어를 최대한 배제했다는 점이다. 역사 공부를 할 때 아이도 어른도(어쩌면 나만) 가장 큰 걸림돌이 한자어임을 알아준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사건과 인물을 배치했다. 그야말로 순서대로 이야기처럼 읽으면 된다.





대한 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1907년에 일어난 의병 전쟁으로 긴 독립운동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연히 침략 국가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키려고 하니 반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된 무기를 가진 일본 군을 상대로 의병단이 승리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의병단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인물, 홍범도 장군이 떠올랐다.

홍범도 장군의 원래 직업은 포수였다고 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의병이 되었고, 동료 사냥꾼들을 모아 의병 부대를 조직하고 일본군과 싸웠다고 한다. 그 활약이 대단해 사람들이 그를 ’ 홍대장‘이라고 불렀다고.


일본군이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벌인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했는데, 망명한 동안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은 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훈련도 하고 무기도 구했다. 이때 무기를 산 돈은 독립운동가들이 막노동을 한 돈도 있지만, 만주로 이주한 동포들을 비롯한 많은 한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준 돈이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은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구한 무기들을 목숨처럼 여겼다고 한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1907년보다 한참 후, 3.1 만세 운동 직후 독립 전쟁의 시기이다. 사람들은 3.1 운동 후 평화 시위와 외교만으로는 독립을 이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1920년, 대한민국 임시 정보는 독립 전쟁 시기를 선포하고 이를 기다렸던 홍범도 장군 역시 성명을 발표한다. 독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해외로 망명했던 사람들이 다시 목숨을 걸고 독립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차오르기도 했다. 평화의 시대에는 실감하지 못했으나, 지금 이 순간 전쟁이 코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역사서에서 읽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것이 현실의 전쟁이었다. 부귀영화도 그 어떤 명예도 아닌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그곳에 뛰어들 수 있을까?


나는 군인도 아니고 하물며 사냥꾼도 아니라 살생이 어떤 것인지 여전히 아득히 모른다. 필터링된 미디어의 어떤 장면만이 전쟁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미 몇 차례 전투를 겪고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홍장군이 또다시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조국의 독립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감상은 이쯤 하고, 홍장군은 성명 발표 후 같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또 다른 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와 연합하여 유명한 ’ 봉오동 전투‘를 치른다.


함경북도에서 일본군을 치고 돌아온 신민회를 만주까지 일본군이 추격해 왔는데, 신민회와 연합한 홍범도 장군 부대가 그들을 봉오동 상촌으로 유인한 것이다. 봉오동 상촌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라, 일본군을 제대로 유인한다면 우리 군이 그들을 포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민회는 겁을 먹고 도망친 것처럼 일본군을 유인했다. 일본군은 자신들의 병력과 기세를 믿고 국경까지 넘어 신민회를 추격해 왔고 결국 큰 피해를 입은 채 도망쳤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봉오동 전투가 사실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 독립 전쟁 제1회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울 일이었다. 근대화된 무기와 군사력으로 압도적일 거라고 믿었던 자시들의 군대가 처참하게 패했으니 말이다.


과연, 홍범도 장군을 왜 그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략국에 처음으로 큰 피해를 입힌 독립군, 그 부대의 지휘자인 홍범도 장군은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독한 대상일 것이다. 음, 우리는 자랑스럽기만 한데. 그동안 자랑스러운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부끄럽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역사왜곡에 넘어가 줄 생각은 한 치도 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역사 공부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크게 얻은 것 같다. <청소년을 위한 #해시태그 독립운동사>에서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 분량은 5페이지가 채 안 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이렇게 할 말이 많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국방부 출입기자들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한 권만에 얻을 순 없지만, 그래도 독립 운동사의 큰 맥락과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크게 추천해 봄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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