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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은 Jul 08. 2015

능소화 피는 여름

우연이라도 좋다


 봄꽃이 만발하고 화사했던 계절이 어느새 저 먼발치로 물러갔다. 그리고 올해, 유난히 비가 내리지 않는 더운 여름을 맞이했다.


 여름에도 피는 꽃은 있다. 물론 가을과 겨울에도. 황홀했던 봄만이 꽃 피는 계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계절을 따라 자신의 때를 아는 꽃들은 얼마든지 있다. 얼마전 다녀온 제주에서는 풍성하게 보랏빛 물든 수국들을 만났고 우리 동네에는 담벼락 따라 주홍빛 능소화가 자리했다.


 꽃은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피우고는 항상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속삭여준다. 나는 지난 해 만났던 능소화들을 떠올리며 '아... 어느새 일년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동네에서 맞는 두번째 여름이다. 지난 해 여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출퇴근 길에 정신없이 만났던 능소화를 조금 더 뚜렷하고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능소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줍은 소녀의 오랜지빛 물든 뺨처럼 고운 빛깔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여리지만은 않은 꽃이다. 오히려 강하고 힘찬 나팔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진녹색의 잎사귀와 함께 담벼락을 따라 곳곳에 풍성히 맺힌 능소화는 어떤 벽화보다 예뻤다.


 사실 작년까지는 능소화의 이름조차 몰랐다. 사진에 관심을 갖게되고 뒤늦게 여름에 만난 꽃이 능소화였고,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낯선 존재의 이름만을 알게 되는 것으로도 친근감을 형성하기에는 충분했다. 서너번 잊어버리고는 '아...네 이름이 능소화였지...'라고 되뇌이며 능소화는 내가 아는, 또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는 야생화 그리고 들꽃을 만날 때면 나는 다시 한 번, 생명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생명력이라는 것은 마음을 조용히 파고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외출 하는 길, 능소화 한 송이가 발치에 툭하고 떨어졌다. 살포시 밟을 뻔한 것을 놀라며 발을 뒤로 뺐다. '아...너구나,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버렸구나'. 아직 시들지도 않았고 선명한 빛깔을 지닌 꽃 송이를 그냥 지나칠까 잠시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우연이라도 좋다.


 내 앞에 떨어진 너를 주었다. 어찌해야할 바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고 습관처럼 능소화 한 송이의 모습을 남겨두었다. 그렇게 작은 인연을 나는 놓칠 수 없었다. 네 예쁨은 곱씹어보기에 충분했으니까.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그말, 이 시가 단순히 광화문의 대형 서점에 걸렸기에 모든 이의 마음에 남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선뜻 지나칠 수도 있었던 우연이 가만히 보면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차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 순간과 사랑하는 사람과 찰나의 시간을 우연처럼 지나칠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당신은 정말 아름다울까. 예쁘게 빛날까. 곳곳에 우연히 핀 능소화를 만나보자. 방긋 웃는 여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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