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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은 Nov 10. 2015

인도에 다녀왔다.

여행을 도통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무더웠던 지난 8월, 나는 당시 지긋지긋했던 회사를 퇴직하고 빈둥거리던 상태였고 아는 동생의 제안으로 한 단체를 통하여 인도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청년들이 모여 인도 빈민계층 아이들에게 예체능 수업을 가르쳐주는 식의 봉사활동과 여행을 겸한 프로그램이 내가 다녀온 인도 여행이다. 당시 딱히 하고 있는 일도 없었고 무언가 보람차고 의미 있는 사건을 애써 만들고자 나는 급작스레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퇴직 후 쉴만한 빌미가 필요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도 무언가 '했다'는 위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몸만 비행기에 실려 보내졌다 갔다 오면 그만이라는 약간의 수동적인 마음이 내심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렇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잠시 얘기하자면 난 빨빨이 보다는 집순이에 가깝다. 보통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이 인생 참 멋지게 산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에 비하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대학생 때는 도통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나도 그들처럼 멋지게 여행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꼭 가야 한다고 느끼지도  못할뿐더러 가서도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할 지를 잘 모른다고 해야 하나. 사색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담긴 여행, 나는 매번 그 끝에 다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곤한 밖 보다는 편한 집이 좋을 뿐.


  어쨌거나 떠나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인도에 다녀올 생각을 하냐며 대단하다고들 말했다. 혹은 위험하지 않겠냐며 나의 안위를 걱정했다. 나는 단체로 떠나는 거라서 괜찮다며 가볍게 응대하는 식이었는데 불현듯 떠나기 며칠 전, 잠 자리에 누워 인도를 다녀온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근거 없는 용기가 들더라. 안전이나 건강 상의 염려는 별로 없는 편이지만 난 여전히 주어진 삶이 두렵고 때론 무서운 실업자, 곧 또한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던가.




  서론이 길었다. 말레이시아 공항 근처의 숙소, 새벽 두시 반 경. 비행기 놓치는 것이 무섭긴 한 모양이라면서 룸메이트와 함께 알람 소리에 즉각 눈을 떴다. 공항으로 향했고 드디어 인도 첸나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렇게 세 시간 반 가량 비행을 했던 거 같다. 생각보다 공항은 깨끗했고 미리 인도에 와 있던 일행이 작은 장미 꽃 한 송이씩을 건네며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며 맞아주었다. 킁킁 인도냄새를 맡아보았다. 여행의 시작이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데 무지막지한 경적소리가 여기저기서 수없이 계속하여 울렸다. 인도에 용감하게 홀로 다녀온 친구가 말해줬던 거처럼 많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인도에서의 경적소리는 다만 '나 여기  있어요.'라는 차들의 노래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입국을 환영하는 의미의 세레나데 같이 들렸다.


  숙소로 향하여 간단히 아침을 먹고, (기내에서도 먹었는데 벌써 아침만 두 끼 째다.) 짐을 내려두고 마을 공동체를 만나러 출발했다. TTA라는 비영리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단체는 사람들의 낮은 의식 수준을 개선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한다. 일종의 NGO다.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들, 아니 인도 사람들. 그들에게는 내가 외국인이었고 인도 사람들의 눈빛은 우리를 흥미진진하고도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마을 회관 준공식에 참여하고 마을 주민들을 만나는 시간. 아, 처음 먹는 손으로 먹는 점심 식사라,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난 인도의 문화였다. 당황스러웠지만 타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며 손을 쓰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나를 깔끔하게 키운 편인데 좋게 말해서 깔끔이지 나쁘게 보면 약간의 결벽이다. 곧 젓가락인지 손가락인지 모를 내 손에 묻은 음식들, 내 혀에 닿는 나의 손 끝, 종종 익숙하지 못해 흘리게 되는 모든 상황이 조용히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팀원들은 잘만 먹는 거 같은데 어째 나는 이렇게 곤란한 건지.


나는 그들에게 신기한 외국인이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마을 주민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화장실을 짓는 일에 애쓰는 한 아주머니.


인도의 청년들은 맑디 맑다.


내가 참 좋아했던 - 인도 곳곳에, 자전거 있는 풍경


말을 걸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던 그녀. 홀로 외롭더라.


나이가 참 많으셨지만 정정하셨던 그녀, 아름다운 할머니.


사진 찍히는 걸 참 즐거워 하던 그 소년.


우리의 신발과 그들의 신발이 섞여 있다는 것.


인도의 색은 이토록 아름답다.


새침하고 아주 작았던 한 꼬마 소녀.


사이가 참 좋았던 두 소녀.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개 두 마리, 그리고 오토바이 두 대.


마치 굴렁쇠 굴리는 아이같이,


이 곳이 마을 회관의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다. 자금이 없어 완공하지 못했단다.


아주 작은 아이를 안고 사진을 부탁했던 미소가 밝은 소년.

  

  자리를 옮겨 나무를 엮어 부채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마을 공동체에도 잠시 방문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시간. 마을과 한참이나 떨어져있던 숙소로 털털 거리며 잘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 가는 길, 아름다운 인도의 길거리. 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의 행렬, 그들이 들고 가던 꽃 장식된 막대 끝에 달려있던 작은 종들이 울리던 찬란한 소리. 그리고 가는 길, 만났던 모든 하늘과 거리.


우리가 타고 가던 버스, 그리고 인도의 흔한 택시와 같은 릭샤.

  오히려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였는지 마음으로 빨리 적응하자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런데 불편함이 당연해지자 그 순간이 행복해졌다. 모든 순간이 땀 삐질삐질 흐르도록 무덥고 습하던, 지저분하게 가난한 그들의 일상과 빵빵거리는 경적소리,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행복은 그 순간에 있었다. 화장조차 하지 않은 (모든 것을 체념한) 그 순간에 나는 환하게 방긋 웃어 보였다. 참 인도다운 행복한 여행이다.


  보통 현실이 아름답지 못해서 우린 보통 이상을 추구하고 쫓으나 인도의 오늘, 지극한 현실은 지극한 아름다움이 되었다. 잃을 것도 없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보여주기 식의 삶이 없는 그들의 일상은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다. 나 혼자 멀찍이 그들을 구경하고 예쁜 인증샷을 남기는 보통의 여행과는 달랐다. 이번 우리의 여행은 불편함이 현실이 되었고, 그나마 이것도 대접받는 것이라는 걸 희미하게 느꼈으니 말이다. 나의 아름답다는 감탄사는 관찰보다는 경험에 까까웠고 그래서 더 마음에 남았던 거 같다.


  우리는 물을 받아 간단하게 몸을 씻고 벌레와 함께 동침할 준비를 했고, 물도 내려가지 않는 변기에 앉아야 했으며 땀으로 젖은 옷을 빨래하는 몫까지도 모두 이 여행의 일부였다. 씻고 빨래하고 옥상에 빨래까지 널자 어둑 거리 더니 이내 밤이 되었다. 팀원들이 모여 오늘의 감정을 같이 나누었다. 음식으로 비유하여 표현하란다. 그래서 나는 갈치조림이라고 했다. 잔 가시를 제거해야 하기에 불편해서 먹기 어렵지만 부드러운 속살이 좋은, 그리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여전히 궁금한. 나는 아직 인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옥상에서 바라본 해질녘 풍경.


  새벽 두 시부터 시작되었던 아주 긴 하루가 지나 밤이 깊었다. 연락을 주고받지 못해서 미안한 남자친구에게 친구의 와이파이를 빌려 잠시 카톡을 보냈다. 사실 여기는 와이파이 조차 되지 않는 외진 숙소이기에 연락으로부터 자유해졌고 나는 곧 잠을 청했다. 그런데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딱 그때까지. 너무 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너무 피곤하지만 잘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몰려들었고 불을 끄자 온갖 벌레들이 사정없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을 떠나온지 이틀 만에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잠에 들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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