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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은 Nov 20. 2015

낭만은 그렇게 떠나갔다.

NGO 탐방(WORD), 그리고 수업 1일 차




이틀 날.





  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는데, 몸 곳곳에 물린 벌레. (곳곳이라고 말하기에는 꽤나 많이 물렸다.) 수두처럼 팔, 다리, 목 등 여기저기 많이도 뜯고 갔다. 오늘 아침도 인도 음식이다. 음식을 보고 다시 깨닫는다. '아, 여기 인도지.' 여전히 그다지 적응이 되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NGO 단체에 방문할 준비를 했다.


우리가 타고 다녔던 노란 버스, 창문이 없다. 숙소 앞 마당에 세워진 :)


  버스를 타고 꽤 오랜 시간을 달려서 방문한  WORD라는 이름의 단체. 보통 지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교육 수준과 경제력 향상을 위해 일하는 단체이다. 자금을 지원받아 경제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 지역 주민들의 펀딩을 통하여 경제적 규모를 성장시켜가는 등의 활동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그렇지만 그 곳에서 타밀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세 단계에 걸친 지루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삼단 통역(?)에 집중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WORD 단체의 활동을 열심히 설명하고 계신 깔리 아저씨.


  그들은 지역의 마을 여성들과 보통 유기농 기법의 경작을 하고 있었고 그 푸른 밭을 구경하겠다고 신나는 마음으로 달려들어갔던 나는 거친 잡초에 긁혀 허벅지에 상처를 얻었다. 관계자 분의 말씀으로는 소똥이 화학비료보다 충분한 비료가 된다고 하니 똥도 다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덥기도 하고 낯선 환경 때문일까, 이미  그쯤 나는 따가운 햇빛을 피해 지루한 그 시간을 도망치고  싶어졌다.


알록달록 아이들의 하교길.


하교 길 소년을 졸졸 따라다니던 개 한 마리와 릭샤.


푸른 날의 경작하던 그 밭.


햇빛이 쨍쨍하던 날, 한 할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우산을 쓰고 넓은 들판을 걸으셨다.

 

그림 같던 그 풍경이 난 참 좋았다.


잠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정차했던 인도의 한 거리.


  간지러운 살갗을 긁으며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인도의 어지러운 교통체증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슬럼가의 어린이들을 보조 교육하는 수업시간에 맞춰 수업을 하러 갔다. 소위 불리는 방과 후 학습 같은 거다. 다만 슬럼가의 저소독층 아이들이 공립학교의 교육만으로는 학습을 따라가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 민간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활동이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다. 아이들은 내 예상보다 교육된, 그리고 말끔한 상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주며 맞이해 주었다. 많은 꽃들 중에 흔한 장미지만 인도에서 받는 장미 한 송이의 감사함이란, 아마 한국에서 받는 꽃다발보다 더 할 테지.


  하지만 막상 수업을 시작하려 하자 막막함이 몰려왔다.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들도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어떤 식으로 소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우리 사이에는 언어라는 벽이 존재했다. 말 그대로 벽이었다. 넘기 쉽지 않은 벽. 간단한 게임을 하고 (아이들은 모를 테지만 '즐겁게 춤을 추다가', '아이엠 그라운드', '동대문을 열어라'를 연신 불렀다.) 현지 선생님께 타밀어로 번역된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슬픔을 치료하는 7가지 방법'이라는 책이었다. 난 이미 동심을 잃은 걸까. 책에 나온 7가지 방법으로 내 인생의 무거운 고민들을 해결하기엔, 잊게 해주기엔 너무 커버린 걸까. 

  

  집중력이 떨어져 가는 아이들에게 간신히 동화책 읽어주기를 마쳤고 우리도 아이들이 슬픔을 잊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활동하게 하고 싶었다. 책에서 얘기한 한 컵의 사과주스 마시기 대신, 포에 들은 포카***트 가루를 물에 타 한 잔 씩 아이들에게 마시게 했다.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저 마른 목을 축인 듯 그 활동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이제 다음 커리큘럼이 진행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것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평소에 핸드폰은 물론 카메라를 만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기에 특별히 사진 찍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집중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았다. 보통 인도 아이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몇몇 씩 몰려나가 인도의 전통의상인 드레스, 길거리의 자동차,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그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찍어서 돌아왔다. 게 중에 활발한 아이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후,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는 우리에게 보여주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8명의 친구들과 관계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였지만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공유하고 눈빛을 교환한 것은 단순히 분명 그 이상의 것이겠지. 아이들과 언어적으로 유창하게 소통할 수 없음에 좌절했지만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하자, 나의 뜻대로 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자.'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순간이었나 수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으로 다가가자, 마음만은 살아있는 상태로 그 눈을 바라보자.'고 다짐했다.


  그 마음은 다름 아닌, 사랑.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것.


자전거를 타던 인도 청년들의 환한 미소 :D


나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요청하셨던 한 아주머니, 사리의 색이 아름답다.


  어쨌든 어렵사리 힘겨운 수업을 마치고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무심코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낭만은 깨졌다.' 마치 화사하던 벚꽃이 다 지고 떨어졌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낭만은 사라져버렸다. 고작 하루밖에 가지 못할 낭만이었나. 도심에 어지럽게 쏟아져 가는 차들의 경적소리는 시끄러웠고 하루 종일 덥기만 했다. 덥고 또 더웠고 앞으로도 더울 것이다.


  어제처럼 씻고, 빨래를 하고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드디어 나는 입에 익숙지 않았던 음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는데 식빵  한쪽만 먹곤 그 자리를 떠났다. 밤이 깊었다. 오늘 밤에는 더 이상 벌레에게 추가적인 헌혈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피곤했는지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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